"안 한다고 버텼죠. 하지만 팀을 맡은 이상 최고의 팀으로 키워야겠죠."지난 주말 충북 음성체육관에서 만난 정현숙(52·사진) 단양군청 여자 탁구팀감독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제 인생철학이 ‘진인사대천명’이에요. 시작했으면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는 거죠."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우승의 주역이 ‘시골팀 감독’을 맡은 건 2002년 9월. 쉽게 감독직을 수락하지 못했다. "시골이어서가 아니라 단양에 연고도 없어 팀 맡을 입장이 아니라 고사했어요. 이름만 감독으로 올려놓고 ‘얼굴 마담’하긴 싫었거든요." 하지만 정현숙 없으면 팀도 없다며 8개월에 걸친 이건표 군수의 간곡한 ‘협박’을 뿌리치지 못했다.
정 감독은 대충 하는 게 싫었다. 단양에 일주일에 한 번 내려오는 대신 코치를 상주시켰다. 훈련 일정 짜기는 오롯이 정 감독 몫이었다. 정 감독이 선수들에게 내린 첫번째 특명은 자신감 갖기. 이를 위해 정 감독은 대회 개막식 때마다 선수들을 가장 먼저 입장시켜 한가운데 서게 한다. "경기 때 관중 시선을 무시하는 것이 중요해요. 뻔뻔해질 정도로 자신감이 있어야죠."
선수들은 처음에 군청 유니폼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길 무척 꺼렸단다. 정 감독부터 나섰다. "공식석상에서는 꼭 팀 유니폼을 입었어요. 나는 안 입고 선수들에게 강요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2년. 선수들이 확 달라졌다. 잇단 호성적이 말해준다.
무명의 이은희(19)가 10월 전국체전과 11월 MBC왕중왕전에서 잇달아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최근 단양에서 열린 SBS챔피언전에서는 단체전 2위 돌풍을 일으켰다. 사실 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인기가 없다. "밥 숟가락 놓기 무섭게 훈련이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정 감독은 혹독한 훈련을 ‘인생공부’라고 말한다. "냉정하게 말해 몇이나 탁구로 성공하겠어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배우라고 강조하죠." 정 감독의 또 다른 꿈은 단양을 탁구의 메카로 만들기. 그 꿈은 4일 단양에 탁구전용체육관을 세우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올해 단양에서 열린 탁구 대회가 8개에요. 단양은 또 지형이 선수들 훈련에 적합해 새 전지훈련 명소로 뜨고 있어요."
왕년의 탁구 여왕은 침체된 여자탁구에도 할 말이 많았다. "눈앞의 성적에 연연해 검증된 선수들만 써먹다가 세대교체에 실패한 거죠." 정 감독은 잠시 허공을 보며 말을 찾았다. "강물이 도도할 수 있는 건 새 물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넓은 가슴 때문이죠. 저도 그런 강물 같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음성=김일환기자 kevin@hk.co.kr
사진 최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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