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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시 강남불패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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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시 강남불패 유감

입력
200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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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터져 나온 굵직한 쟁점들에 가려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일이 하나 있다. 지난 5년 간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에 들어온 4,352명 중 서울 출신이 3분의 1이고, 또 그 중 3분의 1은 강남, 서초, 송파구 고교 졸업자들이라는 통계다. 남한 인구는 4,900만에 가깝고, 서울 인구는 1,000만을 조금 넘는다(2003년 말 주민등록 기준). 15세에서 64세 사이 인구의 서울 분포비율도 비슷하다. 남한 인구의 5분의 1이 거주하는 서울에서 사법시험 합격자의 3분의 1이 배출되고, 더욱이 서울 인구의 약 15%가 거주하는 강남, 서초, 송파구의 고교 출신자가 서울 출신 합격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유능한 인재가 서울에, 그것도 강남구 등에 몰려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는 주장을 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필기시험 성적이 응시생의 능력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타당한 주장이다. 사실 필기시험 성적은 응시생의 능력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 시험에 대비한 반복훈련을 얼마나 했는가에 좌우되는 측면도 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반복훈련에 집중투자할 수 있는 물질적 환경의 뒷받침이 있느냐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오랫동안 외세의 수탈을 겪고 곧 이은 한국 전쟁으로 거의 모든 산업 기반이 파괴돼 너나 없이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잘살고 못사는 차이가 고작 해야 한 달에 한두 번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느냐, 1년에 한두 번 먹을 수 있느냐의 차이였던 때는 필기시험을 통한 인재 발탁이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영속화 하는지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빈부 격차는 그 때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현저한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필기시험을 통한 인재선발이 여전히 공평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거나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감춘 악의적 선동이다. 필기시험을 통한 선발이 공평하다는 주장은 그러한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많은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장일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알고도 필기시험 만능을 부르짖는 자는 상대방의 벨트 아래를 의도적으로 가격하는 권투선수만큼이나 비열하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조만간 법조인 양성 및 선발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가시험 만능의 오랜 전통과 관성의 힘을 뒤집기는 쉽지않을 것이다. 물론 외국 제도들을 두루 살펴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미국에 변호사시험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같은 제도를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호주와 같이 변호사자격시험이 아예 없는 나라도 있다. 로스쿨제도를 도입하고, 사법시험대신 변호사자격시험을 실시한다고 해서 법조인 선발제도의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법학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들이 과연 제대로 교육을 하는지, 학생들을 제대로 평가하는지를 꾸준히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시험을 치르고 검증을 받아야 하는 대상은 학생만이 아니다. 학교 스스로도 검증의 대상이 돼야 한다. 학교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 진다면, 그 학교의 평가를 믿고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검토해 볼 만하다.

국가시험에 한판승부를 거는 지금의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마치 공평한 경쟁체제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영속화 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될 위험이 크다. 사법시험이 과거 한때는 공평한 인재선발 방법이었다 하더라도 그 동안 우리 법학교육의 황폐화와 우리 법조인의 국제경쟁력 약화의 주 원인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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