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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31> '선택과 집중'의 희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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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31> '선택과 집중'의 희생물

입력
200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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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 다난했던 한 해’.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에 서고 보니 너무 흔히 사용해 진부해 버렸지만 지난 한 해를 표현하기에 다른 적절한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사회적으로 가치관 등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듯 합니다.‘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도 새로 등장해 우리 사회를 바꾸고 있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참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에도 가치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언제부턴가 제 삶에서나 연구 분야에서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몰두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한 해를 보내며 혹시 지난 한 해 동안 너무 전진 일변도로 선택하고 앞으로만 나아가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혹은 몰라서 선택하지 못한 것 가운데 더 소중한 가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에서의 선택과 집중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수많은 씨앗이 떨어져 자리잡고 아름드리로 커가는 나무는 불과 한 두 그루에 불과합니다. 소나무의 경우 헤아릴 수도 없는 가루(송화가루)를 날려 어떤 암꽃에 닿아 그 암꽃이 솔방울로 자라 씨앗들을 담는 ‘선택과 집중’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연에서의 이런 선택과 집중은 아주 정교하고 점진적이어서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보면 그 과정이 투쟁이 아닌 조화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후회를 느끼기 어려운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이 되는 것이지요.

자연에서도 아주 심각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 경우의 대부분은 인간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산 뒷자락에 가보면 유명한 등나무 군락이 있습니다. 그 골짜기 이름이 등운곡(藤雲谷)이라고 하지요. 등나무가 산자락을 덮어 구름을 이루는 곳이라는 뜻이니, 그 덩굴나무들이 만들어 낼 장관이 떠오릅니다. 혹 꽃이라도 피고 나면 그 연보라빛 꽃송이에 실린 꽃향기는 또 얼마나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까요. 사실 등나무라고 하면 정원마다 공원마다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자생적인 집단지는 보기 어려우니 여러 모로 그 가치가 인정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국가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돼 선택됐고, 법으로 보호 받을 만큼 집중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갈등이 일어난 것은 함께 범어산 산자락을 차지한 소나무들 때문이었습니다. 나무 하나만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집중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가치있는 일이지만, 이 노송들 또한 아름답고 또한 사찰의 경관과 의미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나무들인데 그만 선택받은 등나무들이 이 소나무들마저 감고 올라가 하나 둘씩 소나무들을 고사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래서 나무들을 두고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작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갈등(葛藤)이란 말이 칡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풀지 못 할 만큼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하니, 두 갈등의 인과가 예사롭지 않다는 다분히 감상적인 느낌도 듭니다. 다시 어떤 것들을 선택해 집중할 것인가가 그 아름다운 등운곡에 주어진 숙제입니다.

선택을 해 집중하는 주체는 인간이고 자연에서 보면 한없이 불완전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인 것을 생각해보면, 혹 우리가 그 과정에서 놓치고 가는 것들은 없나, 작아도 소중한 가치들은 없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범어사 소나무의 입장에서 아니 그러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가는 그 숲 속에 작은 풀한 포기 입장에 서 보니 너무 쓸쓸하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선택하는 과정에 대한 진중함,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조화로운 자연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 해 동안 감사할 일이 많지만 부족한 편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주신 여러분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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