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리집에 전축이 생겼던 날을 기억한다. 내가 중학생 때, 누나가 첫 월급을 털어 장만했다. 그 때부터 나는 용돈이 생기는 족족 LP를 사기 위해 동네 음반가게로 달려갔다. 대략 4,000원이었던 LP 한 장을 사면 예리한 칼로 비닐을 잘라낸 후 행여 지문이라도 묻을까 곱게 판을 꺼내어 턴테이블에 올려두고, 깃털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핀을 내려놓았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지직대는 노이즈, 이윽고 서서히 흘러나오는 멜로디. 그때 처음 만났던 퀸, 게리 무어, 레드 제플린…. 나의 뮤직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빽판’을 사기 위해 청계천을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니고, 행여 판에 습기가 차거나 기울어져서 모양이 변형될까 두려워 새색시 다루듯 매일매일 애지중지하며 판을 닦아대던 날들. 고교시절 그렇게 소중하게 모은 LP가 한아름이 넘었던 것 같다.
이후 LP는 모두 CD로 바뀌었고, 한참이나 CD를 거부하던 나도 어쩔 수 없이 CD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CD도 어느덧 3,000장을 넘어 이사라도 할라치면 가장 골치 아픈 짐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단 한 장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앨범 한 장, 한 장을 살 때 설레던 기억들, 아름다운 멜로디에 감동했던 추억들 때문이다. 그 음악들은 지나간 내 청춘의 BGM(배경음악)이나 다름없다.
2004년 한 해 동안 음반시장은 대불황이었다. 수많은 학생들을 음악의 세계로 인도했던 동네 음반가게가 전국적으로 겨우 70여 곳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은 이제 휴대폰 버튼 몇개만 누르면, 혹은 키보드만 두드리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싸구려가 되어버렸다.
‘앨범을 산다’는 기쁨을, 비닐을 뜯고 속지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앨범을 첫 곡부터 들어보는 설레임을 이젠 모두들 잊어버린 것일까? 서글픈 일이다.
김양수 월간 PAPER 기자·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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