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후지티보(스페인어로 도망자)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한 페루인은 발음이 비슷한 것을 빗대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일본 밖에서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일본계, 아니 아시아 밖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최초의 아시아계라고 할 수 있는 후지모리 전 페루대통령이 일본으로 도주해버린 직후인 2001년의 이야기이다. ‘터프 가이’를 자처하며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독재자가 국제회의에 참석한다고 출국한 뒤 일본으로 줄행랑을 치고 팩스로 달랑 대통령 사임서를 보내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3년 반 만에 다시 찾은 페루에서 후지모리의 인기는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인기도 조사에서 후지모리가 1위를 달리고 있고 귀국해 다시 출마해야 한다는 여론이 70%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 리마에서 만난 페루인들로부터, 고도 4,000m의 산골오지에서 만난 인디오에 이르기까지 "후지모리"하면 모두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한마디로, 도망간 독재자에 대한 향수, ‘남미판 박정희 신드롬’이 안데스산맥을 휘감고 있다.잉카왕국의 후손인 페루는 남미 중에서도 낙후한 가난한 나라이다. 낮은 해안지대에서 풍요한 삶을 즐기는 백인들과 달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디오들은 고산지대에서 처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90년 이민2세인데다가 농대교수 출신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후지모리가 대선에 출마했다. 그리고 낡은 정치를 혐오하는 다수 인디오의 지지를 받아 예상 밖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후지모리는 군부의 지지를 받아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는가 하면 인권을 무시한 초강경 전략으로 무장게릴라운동을 소탕했다. 그리고 3선개헌에 의해 2000년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고 부정선거에 의해 당선됐다. 그러나 그의 최측근이자 사실상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국장이 야당의원을 현금으로 매수하는 비디오가 폭로되면서 추악한 말로를 겪어야 했다.
그 뒤 페루를 통치하고 있는 사람은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이다. 가난한 산골출신으로 양치기, 구두닦이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 공부를 한 그는 스탠포드, 하버드와 같은 명문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 근무했다. 2000년 대선에는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후보에 불과했다. 그러나 후지모리가 정치공작에 의해 유력 야당후보들을 무너뜨리면서 어부지리로 급부상해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그는 결국 2000년 대선에서 후지모리와 결선투표까지 갔지만 부정선거에 의해 패배했다가 후지모리가 몰락하면서 대통령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고 그의 이 같은 인기하락이 바로 후지모리 향수의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톨레도 대통령의 지지도는 현재 10%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톨레도 대통령이 임기인 2006년 이전에 하야해야 한다고 답한 유권자들이 절반이 넘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대통령후보 출마서류 작성시 유권자 서명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탄핵을 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는 얼마 전 "어떻게 해서 톨레도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됐나"라는 분석기사를 내보냈을까.
톨레도정권의 인기추락에는 민주정부가 안고 있는 딜레마가 자리잡고 있다. 민주화이후 억눌렸던 각종 사회적 요구들이 분출해 사회적 혼란상태를 야기한 것이다. 올 여름에도 페루 최대의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벌였다. 또 한 지방도시에서는 교사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공공건물에 방화까지 했는데 그 중에 법원건물도 포함되어 있어 수천건의 재판서류들이 타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악명높은 국가정보국(SIN)을 해체하고 훨씬 적은 규모의 새 정보기관을 만들자 그 기능이 약화되어 무장게릴라 운동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인기가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톨레도 자신에 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선거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 문제다. 만나는 사람마다 톨레도에 대해 "말만 많았지 약속을 지킨 것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래서 "나토(NATO)정권이구만"이라고 하자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와 "‘no action, talk only’의 준말" 이라고 답해주자 "바로 그거"라고 손뼉을 쳤다.
이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는 부정부패다. 후지모리정권을 몰락시킨 직접적인 계기는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의 부정부패였고 톨레도는 깨끗한 정부를 약속했다. 그러나 톨레도정권역시 후지모리정권못지 않게 부패했다는 것이 국민의 여론이다. 리마에서 만난 대학생에게 "아무리 톨레도가 밉다고 후지티보를 좋아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래도 후지티보가 맨티로소(사기꾼) 라테로(강도)보다는 낫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톨레도는 "말만 번지르한 사기꾼에 국민의 재산을 훔쳐가는 강도"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경제위기와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들의 도덕적 타락 속에 박정희신드롬이 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저 세상 사람, 죽은 독재자의 망령이었다. 그러나 페루의 후지모리신드름은 산 독재자의 망령이라는 점에서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 산골 오지서도 신드롬/ "톨레도는 겉만 인디오 후지모리가 더 서민적"
티티카카호수. 지리시간에 배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이다. 고대 남미문명의 발생지로 해발 4,000m에 위치한 이 호수는 길이 150km, 넓이 50km의 거대한 크기로 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산꼭대기에 바다가 올라 앉아있는 것 같다.
고산병으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안고 이곳의 명소인 우로를 찾았다. 우로는 이곳에 자라는 갈대로 만든 커다란 인공 섬. 이곳 인디오들은 이 인공섬에 집을 집고 사는데 커다란 우로의 경우 그 크기가 엄청나 그 위에 학교와 병원까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후지모리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대통령시절 이곳을 방문해 집집마다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줌으로써 난생 처음 전기의 해택을 보게 해줬다며 팔을 끌고 가 태양열판을 보여줬다. 후지모리는 남미지도자로서는 드물게, 그리고 박정희와 유사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민들을 만나고 스킨십을 하는 리더십 스타일을 구사했는데 아직도 약효를 발휘하고 있었다. 후지모리의 인기는 더욱 골짜기에 들어간 산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호수변의 중심도시 푸노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을 가면 아만타미섬이 나타난다. 이 섬은 섬 전체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고 호수 바로 건너 볼리비아의 만년설이 덮인 고봉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오지중의 오지이다.
그곳에서 하루 민박을 한 다니엘이라는 촌부는 "톨레도는 겉만 인디오로 선거 때만 흉내를 냈다"면서 "오히려 치노(페루에서 동양인을 통털어 일컬는 표현으로 후지모리를 말함)가 더 인디오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후지모리는 부패한 독재자가 아니냐는 질문에도 "측근인 몬테시노스가 잘못해 후지모리까지 욕을 먹고 억울하게 쫓겨난 것"이라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 Footnote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1938~)
페루 출생의 일본계 이민 2세. 페루국립대 총장을 거쳐 1989년 ‘캄비오(Cambioㆍ변혁) 90운동’을 조직, 정치에 투신했다.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한 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보수의회를 해산하고 신헌법을 제정했다. 95년 재선한 뒤 인플레를 잡고 반군까지 진압, 사회 안정을 이뤘다. 헌법까지 고쳐 2000년 3선에 성공했지만 정권비리가 폭로되면서 권좌에 오른지 10년 만에 실각했다. 부패혐의로 기소돼 일본에 망명한 채 귀국하지 않고 있다. 최근 2006년 대선출마를 공식화했다.
▲알레한드로 톨레도(Alejandro Toledo 1946~)
원주민 출신의 첫 대통령. 구두닦이 양치기를 거쳐 국제장학생으로 미 스탠포드 대학에 유학한 경제학 박사다. 후지모리 체제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뒤 2000년 대선에서 빈민층과 지식인의 지지로 당선됐다. 그러나 사회세력간 이해조정에 실패, 정책이 표류하면서 80%를 넘던 지지율은 곤두박질했다. 겉만 원주민이고 속은 미국식 사고로 가득차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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