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그제 발표한 ‘대기업 소유지배구조 매트릭스’, 일명 ‘재벌 지분 족보’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의 재벌개혁이 이어져 왔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멀다고 판단된다. 전경련 등 재계는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고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반시장적 행위"라고 반발하지만, 이번 공개를 선진적 지배구조 정착의 촉매로 삼겠다고 나서는 것이 훨씬 어른스럽다.몇 가지만 보자. 자산 2조원 이상으로,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36개의 대주주 일가 지분 평균은 총수 1.95%를 포함해 4.61%다.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받는 13개 재벌만 보면 총수(1.48%)를 포함한 이 수치는 3.41%로 더욱 낮다. 그럼에도 총수 일가가 행사하는 그룹 내 내부 지분율은 49.08%에 이른다.
또 지분율 3%에 불과한 총수 및 직계가족(배우자와 존·비속)이 44.78%의 계열사 지분을 행사하고, 36개 대기업집단 계열사 781개 중 총수 일가 지분이 전혀 없는 곳도 60%를 넘는 469개에 달한다. 특히 고객이 맡긴 돈으로 운영되는 18개 재벌 소속 67개 금융회사가 109개 계열사에 2조3,600억원(취득가 기준, 지분율 9.9%)을 출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상호출자금지 규정을 피해 간 순환출자 덕분이다. 재벌 일가가 편법을 이용해 황제적 지배력을 행사하면 경영에 실패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이른바 ‘세습경영’도 전혀 견제 받지 않는다. 재계는 공정위가 총수 친인척별로 지분현황을 공개해 사생활 비밀 및 영업기밀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적대적 M&A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고 주장하나, 이 정도의 정보는 마음만 먹으면 금감위 기업공시 사이트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재계는 괜한 반발로 스스로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자가당착을 범하지 말고 사회의 성숙도에 부응하는 지배구조 혁신을 지속하는 것이 옳은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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