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대체 언제까지 잔인해질 참입니까’.28일 무혁(소지섭)-은채(임수정) 커플의 죽음을 암시하며 16부로 종영하는 KBS2 월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연출 이형민). 30%에 근접한 시청률과 게시판에 달린 40만 건의 댓글 같은 수치로 평하는게 오히려 옹색하게 느껴지는 ‘미사’의 12회 대본에 이경희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질문은 신(神)이 아니라 "사랑이 얼마나 징그러울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제작발표회장에서 털어 놓았던,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아 울먹이게 만든 작가와 ‘미사’ 제작진에게 돌아가야 한다.
가슴 먹먹하고 서늘한 사랑을 비극적으로 그린 ‘미사’는 호주로 입양됐다 버려져 들개처럼 자란 무혁이 ‘우유 100트럭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살면서’도 자신을 버린 엄마 오들희(이혜영)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무혁은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자 톱 스타인 최윤(정경호)을 파멸로 이끌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윤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코디네이터 은채(임수정)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 그를 ‘예정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어가는 무혁 앞에서 그가 자신의 자식인 줄 꿈에도 모르는 오들희는 사후 심장 기증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어머니, 지금은 제발 눈물을 아껴두세요. 앞으로 당신이 흘릴 숱한 눈물을 위해. 나로 하여 당신이 피눈물을 흘릴 때까지"라고 독백하는 무혁. 시청자들은 이 잔인한 운명 앞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들의 운명을 시험할 참이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게임이냐? 스타크래프트냐?’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은채. 자신을 버린 엄마를 증오하지만, 속으로 "윤이를 위해서 흘린 눈물 백만분의 일만 저를 위해 흘려 주시겠습니까?"라고 외치는 무혁. 삶에 속절없이 배반당한 두 청춘 남녀를 ‘미사’는 한번의 주저도 없이 비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간 트렌디 드라마가 ‘사랑으로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명제를 아무 설명없이 던져놓고 출발했기에 그 사랑이 한없이 가볍고 비현실적으로 비췄다면, ‘미사’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그리고 비극의 형식을 빌어 이들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 방식을 점검해 가는 과정을 타당하게 풀어간다. ‘불치병’ ‘형제가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3각 관계’ 같은 트렌디 드라마에 빈번히 등장하는 낡은 장치들을 빌려 쓰면서도 ‘미사’가 진부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다.
개연성 결핍과 왕자-신데렐라 이야기의 거듭된 변형으로 인해 남루해진 한국 트렌디 드라마는 ‘미사’를 통해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미사’는 ‘재벌2세의 사랑’이란 뻔한 소재를 계급갈등이란 현실의 프리즘을 통해 보여준 ‘발리에서 생긴 일’(SBS)과 철저하게 해체된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탐구했던 ‘아일랜드’(MBC)와 함께 2004년 한국 드라마가 이룬 또 하나의 성취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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