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 하나?""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 말은 베토벤이 자신의 말년 작품인 현악사중주 16번의 악보 위에 적은 가사다. 뭐라구? 현악사중주곡에 가사가 붙어있다고? 사실이다. 실제로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이 가사를 주제로 두 개의 멜로디가 주고받는 문답형식으로 작곡되어 있기에 기악곡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신기한 작품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작곡에 있어서 완벽주의자였던 베토벤의 ‘고뇌에 찬 물음’이라는 의견도 많지만, ‘가정부에게 월급을 지불해야 하나?’ 라는 사소한 얘기라는 가설도 상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 그럼 이 유명한 질문에 담긴 비밀은 무엇일까?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이 베토벤에 대한 영화가 개봉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영화로는 그리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니고 크게 히트하지도 않았다. 음악적으로도 베토벤의 음악성보다는 여자관계에만 집중한 것 같아 영 석연치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주연을 맡은 개리 올드만의 광적인 연기만이 기억에 남은 정도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나는 베토벤 최고의 걸작인 마지막 현악사중주들을 입문한 상태였는데 우연히 한 영화채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것이 있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이 놓쳤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장면은 당시 개봉했을 때도 버젓이 들어있었지만, 그냥 지나친 장면이다. 영화가 마지막에 이를 때쯤, 한 여인이 병든 베토벤의 집을 찾아간다. 그의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 말할 힘조차 없는 베토벤이 침대에 누운 채로 작곡을 하다가 손님을 맞이한다. 그는 곧 바로 옆에 준비해둔 서류를 보여준다.
"조카인 칼 베토벤의 양육권을 당신에게 넘기겠소." 라는 서류다. 영화를 중간부터 다시 봐서인지 앞 내용은 알 수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베토벤은 갑자기 여인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메모를 하려는데 종이가 없다. 그러자 방금 자신이 작곡하고 있던 오선지 위에 글자를 적기 시작한다.
"꼭 그래야 하겠지요?"
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장면을 주시했다. 여인이 펜을 건네받아 그 밑에다 적는다.
"반드시 그래야 하겠습니다"
그 악보는 현악사중주 16번의 악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위한 가설이라 할지라도, 정말 멋진 설정이다. 그 작품을 연주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 장면. 보통 사람인 우리는 의미 없이 지나갈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명장면은 쉽게 잊혀지고 말았다. 다시 보기를 정말 잘했다.
현악사중주 콰르텟X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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