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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南美 정치논평] (2) 베네수엘라 민중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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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南美 정치논평] (2) 베네수엘라 민중의 선택

입력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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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카라카스의 시내를 달리다 보면 시내 한복판에 덩그렇게 비어 있는 동상이 나타난다. 즉 동상은 없고 동상대만 있는 것이다. 사라진 동상은 바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컬럼버스의 동상이다. 이 동상처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볼리바르혁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수구세력들이 요구한 국민투표에서 획득한 승리를 만끽하고 있던 2004년 10월, 베네수엘라의 젊은 활동가 200여명이 이곳으로 몰려와 컬럼버스의 동상을 철거해버렸다. 신자유주의를 미국의 새로운 식민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식민주의의 원조인 컬럼버스의 동상을 그대로 두고 기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처럼 볼리바르혁명은 차베스 정권의 통제를 넘어서 밑으로부터 빠르게 급진화하고 있다. 이는 89년대 말 식량폭동이후 활성화된 민중운동의 전통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지원하는 차베스정부의 참여민주주의정책이 결합하여 생겨난 현상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민중에게 권력을 주지 않는 한 가난을 없앨 수 없다"는 독특한 철학에 의해 소외세력이 스스로를 교육하고 조직화하도록 지원해 왔다. 예를 들어 "교육이 혁명의 정치적 힘"이라며 ‘미션 로빈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문맹퇴치에 나섰다. 그 결과 70대 이상의 노인 7만5천명을 포함해 인구의 5%에 달하는 140만 명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또 그는 가난하고 못 배운 소외세력들이 7명에서 10명단위로 ‘볼리바르 서클’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함께 새 헌법을 공부하고 커뮤니티와 사회의 문제점을 논의하도록 촉구했다. 나아가 지난 국민투표 때는 주민참여를 돕기 위해 다양한 주민조직들이 이동식 사진관을 운영해 3만명의 빈민들에게 투표에 필요한 증명서를 발급해줬다고 한다. "대중의 참여가 혁명의 동력이며 대중 참여 없이는 볼리바르혁명은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사실 차베스대통령이 자신이 직접 참가한 ‘인류를 지키기 위한 세계 지식인과 예술가 대회’에서도 "나는 혁명이라는 허리케인속의 잎새 하나에 불과하다"는 시몬 볼리바르의 시를 빗대어 "나는 민중이라는 허리케인속의 잎새 하나에 불과하다"며 민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다양한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이 지역공동체, 노동현장, 농촌에서 생겨나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예들 들어, 차베스를 실각시키기 위한 수구기업가들의 파업에 동참했던 노동귀족 노조에 대항해 민주적 노조(UNI)가 생겨났다. 또 시장 점유율이 40%에 달하는 주요 제지회사인 베네팔에서는 차베스 실각을 위해 경영진이 총파업에 나서자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고 스스로 생산을 재개해 생산성 기록을 경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회사가 다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하고 해외매각 등을 모색하자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고 정부측에 노동자 자주관리하의 국유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현장을 보기 위해 현지활동가의 안내에 의해 찾아간 곳은 카라카스의 대표적인 달동네 빈민촌인 베가지역. 원래 전기와 수도도 안 들어오던 곳이지만 수도국장 전기국장을 납치, 감금해 수도와 전기를 공급받게 된 지역이라는 설명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간 달동네는 의외로 평화로웠다. 범죄와 폭력으로 경찰조차 접근하지 못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었던 브라질 리오의 빈민가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볼리바르 혁명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셀로 아르젤라는 제일 먼저 필자를 자본의 총파업에 대항해 서민들에게 식료품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대안 수퍼마켓으로 데리고 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별로 품목이 많지 않은 식료품들이 눈에 띄었다. "기업가들의 총파업에 대항해 만든 만큼 모두 중소기업 제품이고 원료도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것이 매니저인 타냐 루이스의 설명이다. 특히 각 제품의 포장에 볼리바르 헌법이 인쇄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루이스에 따르면 이 같은 수퍼마켓이 카라카스시에 40개 정도이고 작은 마켓은 500개 정도 된다는 것. 그녀는 이 같은 대안 수퍼마켓이 없었다면 식량난으로 많은 서민들이 흔들려 수구세력의 반혁명 총파업이 성공할 수도 있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다음에 들린 곳은 대안방송국, 대안학교, 무료급식소가 설치되어 있는 일종의 커뮤니티 종합센터. 국제연대 차원에서 쿠바 의사들이 와서 무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대안병원을 지나 도착한 이 종합센터는 한 활동가의 집을 통째로 활용한 것이었다. 일층 식당에는 어린이들이 모여 무료급식인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고 이층에 올라가자 방송실 옆에 그런대로 책상과 걸상을 갖춘 미니 학교가 나타났다. 이 미니학교에서는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들이 차베스 대통령이 자랑하는 ‘미션 로빈슨’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학교에 다니느라 생활에 지장을 있을까 봐 정부가 한 달에 100달러 씩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젊은 활동가들은 차베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예를 들어, 컬럼버스상을 무너뜨린 것과 관련해 자신들의 동지 한 사람이 아직 감옥에 갇혀 있고 농지법 통과 후 법에 의해 노는 농지에 경작을 하러 들어갔다가 대지주에 살해당한 농민들이 90명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구속된 지주는 한명도 없다는 비판이다. 아르젤라는 "혁명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민중이다. 다만 정부는 중요한 동맹세력일수 있고 미션 로빈슨과 같이 정부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보다 진보적인 민중주체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조직적 공간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활동가가 "정부를 이용하되 이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항상 정부와 건강한 긴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은 노동운동, 농민운동, 학생운동은 놀라울 정도로 발달해 있으면서도 정작 커뮤니티(지역공동체)운동은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 이유를 물어왔다.

소련 동구 몰락이후 누구도 더 이상 혁명과 민중을 이야기 하지 않는 시대에 민중과 혁명의 이야기가 만발하는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는 특이한 경험이다.

■ 달동네 해적FM 등 대안 미디어/ '反차베스' 수구언론에 맞서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에서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대안매체 운동이다. 베네수엘라는 수구적인 기업가들과 기득권세력이 방송과 신문 등 미디어의 9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다. 이들 미디어는 세 차례에 걸친 반(反) 차베스 쿠데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의 일시적인 몰락을 가져왔던 2002년 쿠데타에서는 노골적인 반 차베스 캠페인을 벌였고, 이 기사들이 서구 통신에 인용돼 전 세계에 타전됐다.

이에 차베스의 지지세력들은 해적 라디오와 웹사이트, 전단, 오토바이 메신저, 이동전화 문자서비스 등을 통해 국민을 거리로 몰고 나와 반혁명을 분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2년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와 대선에서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과 유사하다. 이 같은 대안 미디어에 힘입어 권좌로 돌아온 차베스 대통령은 국영미디어를 대폭 강화했다. 이와는 별개로 자유롭고 자율적인 공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건설하기 위해 전국의 250개 대안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영상집단 등이 모여 ‘공동체, 해방, 대안 미디어 전국연합(ANMCLA)’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국영미디어도 중요하지만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나오고 제작에서부터 보급에 이르기까지 자급적인 새로운 민중적인 방송모델이 더 중요하다". ANMCLA의 회원으로 달동네인 베가의 주민 FM방송 ‘라디오 엑티바 드라 베가’를 운영하는 프란시스코 페레즈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는 그 실험 모델인 달동네 단칸방 라디오방송국을 보여줬다. 아담하지만 특이하고, 동네방송으로 FM이라니 너무도 부러운 시설이었다.

또 "차베스정권이 커뮤니케이션의 권리를 헌법에 새롭게 규정하고 상당한 예산을 공동체 미디어 지원에 할당했지만 관료들의 관료주의에 의해 한 해가 다 가도록 예산의 5분의 1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NMCLA는 정보화에 따라 생겨나고 있는 계층간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빈민들, 특히 빈민층의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을 위해 현재 짓고 있는 공동체 인터넷 회관으로 필자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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