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이 포도 씨앗을 뿌리고 있을 때 악마가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놀라운 식물을 심고 있네. 이 식물에는 아주 달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그 즙을 마시면 더없이 행복해지지." "그럼 나도 한몫 끼워 주게." 이렇게 말한 악마는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끌고 와서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뿌렸다. 유대인의 정신적 보고(寶庫)인 탈무드는 포도주의 유래를 이렇게 전하고 이 때문에 ‘술을 처음 마실 때는 양처럼 온순해지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추해지며, 아주 많이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허둥댄다’며 ‘술은 악마가 인간에게 베푼 선물’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술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의 물’로 나타나는 예가 많다. 생명의 물을 뜻하는 라틴어 ‘아쿠아 비타(aqua vitae)’는 원래 연금술 용어로, 9세기 코르도바의 한 의사가 포도주에서 증류한 알코올을 이렇게 불렀다. 이후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를 ‘오드비(eau de vie)’ 즉 생명의 물이라 불렀다. 위스키의 어원은 켈트어의 우식베하(uisge-beath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역시 생명의 물이란 뜻이다. 아일랜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위스키는 12세기 이전 스코틀랜드로 전해졌다고 한다.
■ 러시아의 국민주인 보드카의 어원 역시 생명의 물이다. 16세기경부터 보드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그전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생명의 물이란 뜻의 ‘지즈네냐 보다’였다. 물을 뜻하는 보다(voda)가 보드카로 변한 것이다. 곡류와 감자 등으로 만드는 보드카는 1917년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세계로 퍼져 지금은 핀란드 폴란드 캐나다 미국 등에서도 생산되며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보드카의 2대 소비국이다.
■ ‘악마의 선물’인 술이 ‘생명의 물’로 불리는 것은 술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한 것이리라. 서민들의 술인 소주 판매가 줄었다고 한다. 경기 탓으로 양주 맥주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해도 소주 소비가 준다는 것은 의외다. 잦은 송년 모임으로 술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세모다. 삶을 이어가는 일 자체가 고달팠던 서민들이 소주마저 가까이 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 생명의 힘을 얻을 것인가. 누가 서민들로부터 ‘생명의 물’까지 앗아 가는가.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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