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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00> 하기아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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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00> 하기아소피아

입력
2004.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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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37년 12월27일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의 하기아소피아 성당이 헌당(獻堂)됐다. 헌당식에 참가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1세는 이 건물의 아름다움과 장대(張大)함에 반해 "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에게 이겼노라!"라고 외쳤다고 전한다. 흔히 성(聖)소피아 성당이라고 불리는 하기아소피아는 그리스어로 ‘거룩한 지혜'라는 뜻이다.하기아소피아 자리에는 본디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세운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이 532년의 이른바 ‘니카 반란'으로 소실되자 유스티니아누스1세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에 따른 건축을 지시했고, 1만 명이 넘는 일손이 역사(役事)에 참가해 5년 10개월 만에 새 성당이 준공됐다.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다. 하기아소피아는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 플랜에 거대한 원개(圓蓋)를 씌운 원개식 바실리카 성당이다. 설계자는 트랄레스 출신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토스 출신의 이시도로스라고 한다. 이스탄불이 터키의 지배 아래 들어간 15세기 중엽 이후, 하기아소피아는 이슬람 교회당(모스크)으로 사용되었다. 6세기 건조 당시의 모자이크들은 8~9세기의 성상파괴운동(이코노클라슴) 때 거의 없어졌고, 그 이후의 모자이크들도 이슬람교 지배 아래 석회질로 덮여 흔적을 잃었다가 20세기 들어서야 미국 고고학 팀에 의해 모습을 들어냈다. 하기아소피아는 현재 특정한 종교와는 무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차례로 껴안은 하기아소피아에서 보듯, 이스탄불은 동과 서의 결절점(結節點)이라 할 만하다. 문화적으로만이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있다.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인들이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건설한 이 도시는 4세기 말부터 1923년까지 1600년 동안 동로마제국와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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