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경제는 시련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기업과 은행 최고경영자(CEO)에겐 누구보다도 힘든 시기였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발군의 경영능력으로 최고, 최선의 한 해를 보낸 CEO가 있는 반면 명예도 실익도 놓쳐버린 CEO들도 적지 않았다. 영욕이 교차한 CEO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뜬 별들 = 금융권에선 황영기 우리금융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탁월한 국제감각과 리더십, 세련된 매너로 이미 삼성증권 사장 시절부터 ‘스타’ 기질을 인정 받은 황 회장은 ‘비은행·재벌 출신’이란 핸디캡을 뚫고 우리금융회장으로 화려하게 입성, LG증권 인수와 개성공단 진출 등 ‘연속 안타’까지 날렸다.
‘마지막 서울은행장’이었던 강정원 행장도 김정태 전 행장의 뒤를 이어 2년만에 국내최대 은행 CEO로 컴백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대투증권 인수 등 경영성과 외에 왕성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존경받는 기업인 상’까지 수상했다. 씨티+한미 인수·통합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은 한국씨티은행 하영구 행장은 부와 명예를 양손에 거머쥐며 최고 한해를 보냈다. 업계에선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 ‘작업복 스타일의 현장맨’ 이미지를 벗고 스타CEO로 본격 발돋움했다. 김 부회장은 뉴스위크가 ‘2005년에 주목할 인물’로 소개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8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한 황창규 반도체총괄사장, 모토로라를 제치고 애니콜을 세계점유율 2위로 끌어올린 이기태 정보통신총괄사장, 모든 작업을 총괄하는 윤종용 부회장 등 ‘삼성전자 CEO 3인방’이 올해도 변함없는 성과를 일궈냈다.
중소ㆍ벤처업계에선 전 국민을 ‘싸이질’(미니홈피를 오가며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것)에 푹 빠지게 했던 ‘싸이월드’ 열풍의 주역인 SK커뮤니케이션즈 유현오 사장이 단연 돋보인다. 저가 화장품 ‘미샤’ 돌풍을 일으킨 서영필 에이블C&C 사장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CEO다. 카메라폰의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 컨트롤 프로세서(CCP)를 개발한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오너ㆍ총수중에선 물량으로나 인지도로나 현대차를 세계적으로 확실하게 업그레이드시킨 정몽구 회장, ‘경제계의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상업회의소(ICC)회장에 선출된 ‘미스터 쓴소리’ 박용성 대한상의회장, 그룹 승계를 놓고 ‘숙질간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둔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이 주목 받을 만 했다.
◆ 진 별들 = 최대 하이라이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의 퇴진. 환란이 낳은 은행권 최대스타CEO로 3연임을 목전에 뒀지만, 분식회계로 감독당국으로부터 ‘3연임 불가’판정을 받았다. 퇴진과정에서 ‘김 행장의 노욕이 자초한 일’ ‘정치적, 관치적 탄압’이란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계열사분식회계와 대선비자금사건에 휘말려 지난해부터 고통을 받아온 손길승 SK회장은 올초 끝내 영어의 몸이 됐고 SK의 이사직에서도 물러나 ‘샐러리맨 신화’를 비운으로 막내리게 됐다.
자수성가형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로 주목 받던 김동연 텔슨전자 대표도 중국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오너중에선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이 조카 며느리인 현정은 회장에게 패배함으로써 ‘현대가(家) 어른’의 명예에 손상을 입었고,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코오롱 장기파업, 코오롱캐피털 횡령사건 등으로 힘든 한해를 보내야 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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