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佛지리학자 줄레조의 '한국의…' 번역 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佛지리학자 줄레조의 '한국의…' 번역 출간

입력
2004.12.25 00:00
0 0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이제 어느 한국인도 부인하지 않는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70%대 초반에 불과하던 주택보급률이 이미 2002년에 100%를 돌파한 원동력은 정부의 대단위 아파트 조성정책과 주택건설 붐이다. 서울 도심은 물론 고속도로를 따라 수도권에 줄줄이 늘어선 아파트 단지는 장관 아닌 장관이다.외국인들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고 느낄까. 아파트의 사회문화적인 개념이 우리와 전혀 딴판인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의 유별난 아파트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39·사진) 마른-라-발레대학 교수는 1994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서울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충격’ 받았고, 논과 아파트 단지가 만난 풍경에 경악했다. 그는 프랑스에도 우리 아파트 단지와 외형이 비슷한 ‘시테’라는 영구임대주택단지가 있다는데 착안해 두 경관을 비교해 보려는 학구열이 발동했고, 2000년 말까지 수차례 답사를 거쳐 ‘한국의 아파트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지난해 책으로 나온 줄레조 교수의 이 연구논문을 최근 아연출판부가 번역 출간했다.

줄레조 교수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시빈민층이 살아가는 낙후된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한국에서는 중간계급 이상 인구의 상당수가 살며, 인구의 절대다수가 살기를 선망하는 이유를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구반포 주공아파트 단지(4,053세대, 74년 건축) 등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지은 서울 도심 7곳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조사하고 다닐 때, 아파트 경비원이나 거주자들은 대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인구는 많고 땅은 좁으니 아파트 많은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답했다. 그래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역시 땅은 좁고 인구밀도는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도시집중화에 따른 대규모 주택 건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의 아파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외국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준 고급주택’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비교대상이 된 것은 주로 프랑스의 ‘시테’다. 줄레조 교수는 프랑스에서는 60년대에 대규모 단지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때의 국민주택 개념은 ‘저소득층이 집세를 내고 살 수 있는 집을 짓자’는 것이었다. 좁은 평수에 가장 기본적인 시설만 갖춘 이런 아파트들에는 자연히 빈민이나 이민자들이 몰렸고, 아파트들은 결국 도시에서 배척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70년대 중반부터 경제발전의 주역이자 최대 수혜자인 중간계급의 일반적인 주거공간으로 나타난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울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단지들은 ‘급격한 성장모델의 경관적 표현’이며, 이는 ‘재벌과 손을 잡고 국토의 구조와 한국의 경관을 책임진, 강력한 정부에 의해 집단적인 방법으로 고안된 모델’이었다. 이후 중간계급의 지위가 향상되고, 주택부문에 간접으로 개입했던 정부가 후퇴하면서 아파트는 상업주택건축의 기본적인 틀로 자리잡았다. 아파트는 ‘새로운 것’ ‘새 것’ ‘깨끗한 것’이라는 이미지로, 또 ‘도시로의 통합’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됐다.

나아가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프랑스의 단지보다 월등히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한 지역 안에서 새로운 중심기능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도시 내 단지 건물은 단순히 시의 영토 안에 편입(프랑스의 경우는 오히려 배제되지만)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도시로 진정하게 통합되고, 물론 이 통합에 주민들은 만족하고 있다. 줄레조 교수는 ‘한국의 단지는 한강의 기적의 가장 명백한 산물이며,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이며 ‘한국 사회가 현대화로 돌입하면서 쏟아낸 가장 독창적인 산물이고, 현대성의 척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한국인의 아파트 열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는 ‘도시의 형태에는 어떤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아파트 단지는 서서히 사양길을 걷고 있는 모델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증거로 일부 도시민들이 이미 고급빌라에 살며 차별성을 노리는 형태가 나타나고, 중산층 중 일부는 전원주택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대형아파트들의 건축이 중단되고 주로 20평 이하의 서민용 아파트가 도시주변에 건설되는 현상을 꼽았다. 그는 ‘한국 도시관리의 성공은 아파트 단지의 미래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