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000자 춘추] 로또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000자 춘추] 로또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

입력
2004.12.24 00:00
0 0

근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차별이 심해지고,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경기지표와 체감물가지수가 꽁꽁 얼어버렸지만 일부 가진 사람들에게는 남의 집 이야기이다. 최고급 시설과 상품들을 앞 다투어 소유하려는 부유한 이들의 향유는 끝이 없고, 이와는 정반대로 못 가진 이들의 비애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절규한다.올 겨울 연말의 거리 분위기는 예년과는 달리 차갑게 얼어버렸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들리고 불우한 이웃을 찾는 따뜻한 마음도 몰라보게 인색해졌다고 한다. 기부문화가 좀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에는 인색하다. 얼마 전 거금의 로또복권에 당첨된 한 평범한 독일인이 당첨금 전액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유인즉 금전적인 행운이 자신이 이제까지 누려온 평범한 삶의 평화를 깰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금전적인 행복보다 일상의 행복을 선택하는 용기라고 해야 할까?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실패로 돌아간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유의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가진 자의 자본은 강제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단순 논리였는데 실제로 인간은 가진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눌 줄도 안다는 것이었다. 이 단순한 삶의 원리를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지도 모른다.

성탄절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성탄의 기쁨은 단순히 한 종교 창시자의 출생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바로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이 자신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어 오신 신비(神秘)에 있다. 하느님은 자신의 일부를 나눈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선사하신 것이다. 성탄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사랑의 나눔 그 자체가 아닐까?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