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등록기업들이 안고 있는 부채규모가 사상 처음 자기자본 밑으로 떨어졌다. 돈 벌어 투자는 않고 빚만 갚은 결과다. 또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적자기업, 과다부채기업, 이자도 제대로 갚기 힘든 기업 등 한계기업 역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한국은행이 23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됐거나 코스닥 및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된 1,56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3·4분기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6월말 102.5%에서 9월말엔 98.1%로 낮아졌다. 부채비율이 10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기업들이 빌려 쓴 돈(부채)보다 완전한 자기 돈(자기자본)이 더 많다는 의미다.
무차별 확장을 위한 차입경영으로 부채비율은 환란전 400%를 넘기도 했지만 최근엔 투자를 피하고 빚 상환에만 주력하다보니 부채비율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 것이다.
제조업체들의 현금보유규모는 44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말보다는 1조원 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총자산의 10%가 넘는 돈이 사용되지 않은 채 은행계좌나 금고에 쌓여 있는 상태다. 이중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5대 기업의 현금보유액은 13조5,000억원이다.
기업들의 현금보유 증가 역시 투자마인드가 얼어붙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기업 투자지표인 유형자산증가율은 2·4분기 1.1%에서 3·4분기엔 0.5%로 하락했다. 현재로선 기업이 돈을 벌어 하는 일은 빚 갚는 것과 현금 쌓아두는 것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 호조 덕분에 매출은 여전히 좋다. 3·4분기 매출액증가율은 21.3%로 전분기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외형증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오히려 후퇴하는 구조다.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9.9%(1,000원짜리 물건을 팔아 99원을 남긴다는 뜻)로 1·4분기 12.4%, 2·4분기 10.2%에 이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원가가 치솟음에 따라 많이 팔아도 남는 것은 별로 없는 ‘실속없는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위태로운 기업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체 부채비율은 100% 밑으로 떨어졌지만, 과다부채기업(부채비율 200%초과 기업) 비중은 6월말 15.9%에서 9월말엔 16.8%로 오히려 늘었다. 적자기업(매출액경상이익률 마이너스기업) 비중 역시 26.9%에서 29.5%로 상승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못 갚는 기업(이자보상비율 100% 미만기업) 비중 역시 전체 기업의 30.0%에서 36.2%로 증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외형은 전반적으로 커졌지만 수익성은 나빠지고 있다"며 "투자부진으로 재무제표만 좋아지는, 따라서 재무구조개선이 기업 잠재력확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양상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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