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실 개편에 따른 대통령 경제수석(경제정책수석)직의 부활이 경제정책수립과 조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발휘할지, 아니면 힘의 쏠림과 갈등을 낳는 역기능을 초래할지 현재로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출범 이전까지 수십 년간 유지되어왔던 경제수석제도는 원천적으로 장·단점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만큼 부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운용의 묘, 특히 기존 경제팀 멤버들과 ‘인적 조화’를 다지는 게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과거의 폐해 = 가장 우려스런 부분은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장관)와의 관계 설정이다. 경제수석은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이 실리는 자리. 비록 경제부총리가 경제팀장을 맡고 있고 법적 정책조정권한 역시 부총리에게 주어져 있지만 경제수석이 경제부총리 이상의 실질적 파워를 행사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경제수석에게 힘이 쏠려 경제부총리의 힘이 빠지고 재경부의 정책수립 및 조정력이 와해된 예는 적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시절 ‘경제가정교사’를 맡아 문민정부 초반 경제를 주도했던 한이헌씨, 문민정부 후반 최고의 경제실세로 군림했던 이석채씨, 국민의 정부 최장수 경제수석을 지낸 이기호씨 등은 경제부총리 보다 훨씬 힘이 셌던 경제수석들이다. 당시 재경부 등에선 "경제에 관한 한 오너는 수석이고 부총리는 월급사장"이란 얘기가 나돌았으며, 인사까지 경제수석이 개입하는 사례도 있었다.
부총리와 경제수석의 대립으로 정책 자체가 삐걱거리는 경험도 있다. 문민정부 초대 이경식 경제부총리와 박재윤 경제수석은 대화조차 꺼렸을 만큼 사이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신경제 5개년 계획’ 수립과정에서 실무진들이 큰 애로를 겪었다. 이헌재 현 경제부총리가 국민의 정부 시절 재경부 장관에서 7개월 만에 조기 낙마한 이유 중 하나로 이기호 당시 경제수석의 철저한 견제를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정부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경제수석이 ‘스크린’을 치기 시작하면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보고기회조차 갖기 어렵고 결국 대통령의 눈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모호한 역할 = 청와대는 이 같은 부작용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정책기획수석이 경제정책수석으로 이름을 바꿔 기획·평가·조정업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 과거식의 개입 간섭 전횡은 절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선 ‘경제수석 부활’이란 표현도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수석을 그대로 맡게 될 김영주 현 정책기획수석의 업무스타일을 감안할 때, 이헌재 부총리와 충돌가능성은 거의 전무해보인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조정이고 어디까지가 간섭인지 경계는 명확치 않다. 청와대가 경제정책에 대한 기획·조정에 나선다면 재경부의 기획·조정력은 그만큼 위축될 공산이 크며, 모든 부처가 현안이 생기면 재경부 아닌 청와대로 들고 가는 상황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부총리와 경제수석의 양자 관계 못지않게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을 포함한 3자간 역학구도도 관심거리다. 부동산정책 등 주요 현안과 경제운용철학에 대한 이 부총리와 이 위원장의 시각차는 이미 노출됐고 사안에 따라 양자의 무게중심이 옮겨 다니는 상황에서 경제수석의 역할마저 잘못 설정된다면 경제의 컨트롤타워가 3분화해 정책혼선만 가중될 소지도 있다.
때문에 경제수석 부활을 계기로 부총리-경제수석-정책기획위원장의 역할을 포함한 경제정책 수립·집행시스템에 대한 종합적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국민의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역임했던 현정택 인하대 교수는 "대통령 중심제 하에선 경제수석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요즘처럼 경제적 비상시국에선 더욱 필요하다. 다만 전면에는 부총리가 나서고 수석은 뒤에서 밀어줌으로써 두 사람이 투 톱을 이뤄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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