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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검투사의 세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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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검투사의 세밑

입력
2004.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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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코 앞에 닥친 세밑이다. 하지만 연말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흔한 캐럴조차 듣기 힘들다. 송년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경기가 너무 안 좋아 큰 일"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팔리는 물건도 없는데다 내년 경제 전망도 올해와 별다르지 않다니 서민들의 마음은 어수선하다.월급쟁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식당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들은 더 죽을 맛이다. 당장 문 닫을 지경은 아니라 해도 대기업인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올 한해 기업들은 정말 힘든 세월을 보냈다. 송년 모임에서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우리나라 기업인은 로마시대 검투사처럼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울 운명을 타고 난 것 같다"고 자조 섞인 하소연을 했다.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거미줄 같이 옥죄는 정부의 규제는 검투사를 공격하는 맹수보다 더 사납고 무섭다고 고개를 흔든다. 국내 기업의 손발을 묶어 놓고 외국기업의 편을 드는 각종 역차별 정책도 샅바 싸움을 해야 할 대상이다. 그 뿐인가. 종잡을 수 없게 오르내리는 환율과 수시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기업을 적대시하는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는 또 어떤가. 올 들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투기적 외국자본의 인수·합병(M&A)공세에 기업들은 지칠 대로 지친 형국이다.

연초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경제활력을 찾아 민생안정을 이루는 데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제와 민생을 우선해 챙기겠다는 약속이었다. 해외순방 때도 기업인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 "기업이 곧 국가"라며 기업인들의 노고를 칭찬했다. 엊그제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사랑의 열매 음악회’에서는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화제로 올리며 기업 칭송에 열을 올렸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으로만 보면 기업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신이 나고 고무돼야 하지만 표정들이 그리 밝지 않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반신반의하는 기업인들이 더 많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돌아와 친 기업적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 기업인은 "공정거래법, 기업도시특별법, 집단소송제 등 경제관련 법률 제·개정 과정에서 재계 5단체장이 정부 여당을 찾아 다니며 기업경영에 불리한 조항들을 개선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 청와대가 언제 말 한마디 거든 적 있습니까"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통령의 올 신년사가 경제와 민생 챙기기였다는 사실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하긴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개혁입법을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지고 샌 올해를 돌아 보면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

올 한 해도 일주일 여를 남겨두고 있다. 대통령이 집권 3년째를 맞는 내년은 빈사상태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시행착오는 올 한 해로 충분하다. 내년마저 정략적 정치개혁과 과거사 규명을 국가핵심과제로 끌고 가다간 경제는 거덜나고 앞날의 희망은 없다. 말로만 외치는 경제회생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 올 뿐이다. 내년에는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대통령이 앞장 서 경제 살리기에 대한 특단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올 해에 이어 내년에도 불황이 국내 10대 뉴스의 머리를 장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경제를 살릴 행동과 실천의지가 담긴 대통령의 신년사를 기대한다.

이창민 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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