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의 홈런 열병 대신 병역 비리 파문의 한파가 휩쓸고 간 2004 한국프로야구. 하지만 야구 팬들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지켜봤다. 자나깨나 선동열 같은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어했던 까까머리 소년 배영수(23·삼성·사진). 25살까지는 그 꿈을 이루겠다며 등번호도 ‘25’로 정한 그에게 올 시즌은 생애 최고의 해였다.17승2패로 공동 다승 1위와 승률왕 등극. 배영수는 최우수선수(MVP)를 비롯해 올해의 선수상(선수협의회), 골든글러브 최다 득표 등 투수로서 받을 수 있는 명예는 모두 거머쥐었다. 특히 배영수는 9차전까지 가는 명승부가 펼쳐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시즌 초 배영수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5년 전 삼성 역대 고졸 최고 계약금(2억5,000만원)을 받고 입단한 배영수에게는 늘 ‘미완의 대기’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데뷔 첫해 무승의 부진을 털고 2001년과 2003년에 나란히 13승을 올리기는 했지만 불안한 제구력과 허약한 승부근성 때문에 특급투수의 반열에는 끼지 못했다.
꿈은 영원한 우상 선동열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배영수는 삼성 수석코치로 부임한 선동열 감독의 조련 아래 동계훈련에서 하루 3,000개 이상의 연습 볼을 뿌리며 제구력과 두둑한 배짱을 길렀다.
영광 뒤에는 고통이 뒤따랐다. 그는 요즘 지독한 치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악물고 던지느라 어금니에 탈이 나면서 한달 넘게 치과 신세를 지고 있다. "그래도 행복하다"는 배영수는 "내년 시즌에는 20승을 올리고 싶다"는 결의를 다졌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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