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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못생긴 주인공이 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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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못생긴 주인공이 착한 이유

입력
2004.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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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참해.’ ‘그놈 정말, 진국이지.’누군가 소개 받을 때 주선자의 설명이 이랬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소개팅 시장용어로 ‘참하다’는 별로 예쁘지 않다는 뜻이고 ‘진국’이라고 소개되는 남자는 외모가 주로 산적(山賊)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희망적인 것은 그 말이 ‘그러나, 반드시, 착하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는 점이다.

미안하지만 이성재의 추남 분장이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볼거리인 영화 ‘신석기 블루스’. 통유리 너머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번쩍번쩍한 아파트에서 러닝머신을 뛰는, CF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잘 나가는 변호사 신석기가 어느날 갑자기 추남이 된다. 사고로 우연히 동명이인인 추남 변호사 신석기와 몸이 뒤바뀐 것이다. 똑똑하지만 이기적이고 여자를 마음대로 데리고 놀다 뻥뻥 차 버리던 전형적인 못된 남자 신석기.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은 얼굴이 바뀌면서 갑자기 착해졌다는 것이다. 하긴 뻐드렁니에 곱슬머리, 구부정한 어깨의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외모의 신석기씨, 착하기라도 해야 세상 살아 나갈 듯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도 외모와 성격의 함수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쁜 여자는 못됐고, 못생긴 여자는 착하다. 으리으리한 성에서 살고 있는 왕실 마법사 설리먼은 곱디 고운 외모와 달리 전쟁을 일으킨 배후이다. 하늘하늘 옷자락을 나풀거리는 예쁘게 생긴 소피의 엄마는 철 없고 멍청하다.

반면 어느날 갑자기 못생기고 나이 든 노인으로 변해버린 소피는 너무나 착하다. 모두를 감싸주고 치매 걸린 노인처럼 늙어버린, 자신을 할머니로 만들어 놓은 황야의 마녀까지도 보살핀다. 소피가 영화 속 모든 주인공을 감싸안는 ‘어머니’ 역할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젊고 귀여웠던 외모를 빼앗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디즈니 동화에서는 예쁘면 착하고 추하면 악하다. 이 논리대로라면 예쁜 이들은 평생 사랑 받고 추한 사람은 늘 예쁜 이들을 질투하고 해꼬지 하며 살아야 한다. 디즈니의 세상은 무섭다. 그런데 현실세계의 논리가 사실 더 무섭다. 예쁘면 착하지 않아도 용서되지만, 추하면 반드시 착해야 한다. 도저히 예쁘게 봐 줄 수 없는 신석기가 옛날 성격 못 버렸다면, 쭈글쭈글해진 소피가 너그럽지도 않았다면 도무지 받아 들일 수 없는 주인공일 것이다. 못생기면 못생길수록 더 착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기 참 고단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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