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 회담결과에 대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평가가 대조적이다. 우리당 의원들은 22일 "한나라당에 완전히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린 반면 한나라당측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실제로 이번 합의에 따라 4대 법안의 경우 국가보안법은 국회 법사위에 상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나머지 3개 법안 역시 해당 상임위 절충이 안되면 4자 회담으로 넘어오게 돼 있어 4자 회담에서 한나라당이 버틸 경우 얼마든지 처리를 미룰 수 있는 구조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한 쪽으로 기운 합의내용은 "모종의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물론 양당 지도부는 "무슨 소리냐"고 일축하고 있지만, 5시간이 넘게 진행된 협상에서 고작 발표된 내용 정도의 대화만 오갔을 리 없다는 추측도 만만치 않다.
만약 양당 지도부가 발표하지 않은 이면합의가 있었다면, 그것은 4대 법안 중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제외한 2개 이상을 연내 처리하기로 한 약속이었을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래야만 양당 득실의 균형이 맞는다는 것이다.
당초 한나라당이 과거사법과 언론관계법을 연내에 처리하도록 양보하고, 국보법과 사학법은 내년으로 처리를 미룬다는 ‘2+2 방안’을 염두에 뒀던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양당은 이에 합의하고도 한나라당 내 강경 보수파의 반발을 의식해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대신 한나라당이 상임위 협상과정에서 원만한 처리에 협조함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그림이다.
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이날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야 대표가 얘기해 연내에 2개 내지 3개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심상치 않다.
문희상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상당한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국보법도 대체입법에 합의해 연내에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당 지도부는 손사래를 친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양측이 서로 양보한 결과"라며 "원칙주의자인 박근혜 대표의 성격상 이면합의가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당 관계자도 "예산안과 파병연장 동의안 때문에 한나라당을 국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 양당 의총 명암
여야 4자 회담 합의문이 발표된 다음날인 22일 여야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열린우리당은 재협상 요구와 지도부 인책론 등으로 온종일 후 폭풍에 시달린 반면 한나라당은 표정관리를 했다.
우리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4시간 30분간 진행된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영선 원내 대변인은 "연말까지 사즉생의 각오로 4대 법안 처리를 관철하기로 했다"고 의총 결과를 발표했으나, 임채정 기획위원장은 "결의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의총에서 강경파 의원들은 지도부가 사실상 4대 입법의 ‘합의처리’를 약속, 국가보안법의 연내 폐지가 불가능해졌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문학진 의원은 "이런 식의 협상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조경태 의원은 "다수결 원칙을 배제한 4자 회담 결과는 무효"라고 가세했다. "재협상을 해야 한다"(정봉주 의원),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임종인 의원)는 주장도 뒤따랐다.
이부영 의장은 "바라는 대로 성과를 못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고, 천정배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을 국회로 끌어들여 일하는 정치가 가능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분위기를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반면 일부 중진은 "협상을 앞둔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한명숙 의원), "협상은 주고받는 것"(염동연 의원)이라며 지도부를 옹호했다. "협상이 잘못됐더라도 적전 분열은 안 된다"(정청래 의원)는 양비론도 적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이 같은 입장 차이를 내년 4월 전당대회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었다. 천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재야파나 개혁당파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권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바깥의 온-오프라인도 시끄러웠다. 평당원 7명이 이날 오후 영등포당사 의장실을 점거해 농성에 돌입했고, 당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지도부를 소환해야 한다"(ID 지나랑)는 비난이 줄을 이었다.
내홍에 시달리는 여당과 달리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날 합의결과에 대해 대체로 흡족해했다. 전여옥 대변인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가 공평하게 나눈 ‘윈윈’ 협상이었다"고 논평을 낸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
의총에서 박근혜 대표는 "앞으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차분하고 진지하게 임하겠다"고 말했고, 회담결과를 설명한 김덕룡 원내대표는 모처럼 박수를 받았다. 홍준표 의원은 "당분간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뒷말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오후 쟁점 법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해당 상임위를 열었지만 합의문에 대한 동상이몽 해석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법사위에선 "4자 회담을 하더라도 국보법안을 먼저 상정하자"는 우리당의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합의정신을 위배한 것"이라고 맞섰다. 과거사법을 논의한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연내 합의처리를 위해 일정부터 확정하자"(우리당), "‘연내처리’는 노력할 사항일 뿐"(한나라당)이라는 논쟁이 이어졌고, 교육위에선 그 동안 여당 단독으로 진행한 법안심의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전체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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