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38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가 뜻하지 않게 좌우 이념분쟁의 광풍에 휘말렸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59) 교수가 7월 21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주요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8월 5일 독일로 출국하면서 환송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던 그의 표정은 긴 악몽의 터널을 힘겹게 빠져 나온 뒤의 허탈함 그것이었다. 그가 고국에서 잠깐동안 보고 간 것은 세상의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전과 이념대립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낡은 현실이었을 것이다.송 교수 사건은 우리사회에 국가보안법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개폐 논의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송 교수가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체포되어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조사를 거쳐 구속기소되고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될 때까지만 해도 국보법의 서슬은 여전히 퍼랬다. 송 교수 자신도 국보법의 건재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했다.
1심 공판에서 그를 괴롭힌 검사의 질문은 주로 이랬다. "80년대 저서에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표현으로 남한의 노동자와 농민을 지렁이에 비유한 것은 잘못 아닙니까?""우리 농촌이 매우 비참한 것처럼 썼는데 이것은 88올림픽을 앞두고 남한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기 위해 쓴 글 아닙니까?" 이러한 질문은 한 시간 가까이 지속됐고, 법정을 지배해야 할 ‘증거’나 ‘사실’에 대한 논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북의 경계를 걸으며 두 조국을 동시에 안으려 한 학자로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함께 패배감을 맛봤고, 그의 학문이 국내 친북세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거품을 물었던 사람들은‘죄값’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이념과 상관없이 학문을 ‘누구의 편이냐’를 기준으로 재단, 범죄성을 부여한 1심 재판부의 판결에 학계는 충격을 받았다.
3월 30일 1심 선고 직후, 송 교수의‘내재적 접근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서강대 강정인 교수는 한국일보에 판결을 정면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강 교수는 기고문에서 "국보법의 실효성을 일단 긍정하는 전제에서 말하더라도 법원은 송 교수가 지도적 임무를 수행한 주된 활동을 저술이 아닌 다른 활동에서 찾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채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변호인측 요청을 받아들여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강 교수는 태평양을 건너와 법정에 섰다. 컬럼을 쓴 취지를 묻는 재판부에게 강 교수는 "만일 우리 사회가 한 저작에 의해 안보위협을 받는다면 그 저작이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안보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나는 송 교수 같은 사람 10명이 나와서 100배 더 심한 논쟁을 벌여도 우리 사회에 아무런 안보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재판부, 검사와 긴 논박을 벌였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달랐다. 송 교수의 저술활동을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으며, 북한을 다녀왔다는 단순한 사실에 대해서만 국보법의 잠입·탈출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얻은 교훈이 있다고 상처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간첩죄가 아닌 국보법 위반죄 임에도 수사과정에서‘거물 간첩’이라는 타이틀로 폭로되고, 국보법의 모호성에 힘입어 행적은 왜곡되고, 살아온 정체성을 부정하라는 반성과 전향요구에 개인의 정신은 짓눌렸다. 송 교수 사건은 냉전 이후 고착된 우리사회의 이념갈등과, 여기에 뿌리를 두고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집단적 가학성’의 실체를 남김 없이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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