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로 예정됐던 증권예탁원의 임시 주주총회가 증권거래소의 불참으로 무산되는 등 통합거래소 출범을 앞두고 거래소와 유관기관간 업무 재조정을 둘러싸고 막판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이에 따라 출범 시한이 1개월도 남지 않은 통합거래소 설립에 차질이 우려된다.증권예탁원은 이날 임시주총을 개최하려 했으나 70.23% 지분을 보유한 증권거래소가 불참해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임시주총에서는 통합거래소의 법적 근거가 되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제정에 따라 "주주는 예탁원의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의 10%를 초과 보유할 수 없으며, 주식한도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라는 정관을 신설할 계획이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의결권 제한과 같은 주요 안건을 대주주와의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려고 해 불참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탁원 측은 "예탁원의 소유구조 개선은 지난해 10월 재정경제부가 확정한 ‘증권선물시장 선진화 방안’에 따른 것"이라며 "통합거래소가 예탁원을 계속 장악하려는 횡포"라고 비난했다.
두 기관의 갈등은 거래소 측이 "통합 후에는 현재 예탁원에 위임하고 있는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매매대금 결제업무를 되찾아가겠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잠복해 왔다. 양측은 현재 통합거래소와 예탁원의 기능 재조정 방안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결제·청산 기능의 재편을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존립 근거를 위협 받게 된 예탁원 측은 거래소가 통합 후 남는 인력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예탁원 업무를 빼앗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반면 거래소 측은 업무 효율을 위해 위탁했던 고유업무를 되찾는 것일 뿐이며, 증권거래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도 시장이 결제기능까지 총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두 기관의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당기간 후유증이 지속될 전망이다.
통합거래소와 한국증권전산㈜간 업무 재조정도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측은 통합 후 독자적인 전산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증권전산 노조는 "통합거래소가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전산체제 개편을 기도한다면, 증권·선물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고통과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통합거래소와 합리적이고 대등한 사업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와 유관기관의 알력을 지켜보는 증권업계의 시각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들 기관의 기능 재조정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이미 관료화한 직원들의 자리 지키기 싸움일 뿐"이라며 "증권사들은 장기 불황 속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증권사들이 출자해 만든 거래소 및 유관기관들은 기구 축소 등 고통분담은 커녕 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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