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들의 곱고 애절한 추억들을 하나 둘 곱씹어야 될 황혼의 나이에 꿈결처럼 찾아온 사랑은 얼마나 살가울까. ‘늙은 부부 이야기’는 각자의 배우자를 수십 년 전 먼저 떠나 보낸 두 노인의 아름다운 ‘동거’ 이야기이다. 2002년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죽어도 좋아’의 무대 버전이라 할 수 있다.아들 집을 나와 독립을 선언한 박동만은 그전부터 점 찍어놓은 욕쟁이 과부 할머니 이점순의 집에 세를 든다. 할머니는 구수한 사투리로 넉살 좋게 다가서는 할아버지를 앙칼지게 대하지만, 마냥 싫어하지는 않는다. 봄날 햇살처럼 따사롭게 다가온 사랑은 폭염의 여름을 거치며 뜨겁게 타오른다. ‘알콩달콩’ 애정을 쌓아가던 둘은 조락의 계절 가을에 이별을 예감하고, 운명처럼 혼자만의 겨울을 맞이한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두 노년의 사랑을 너무 가볍거나 무겁게 그리지 않는다. "파래무침이 좋은가? 나가 더 좋은가?"라는 닭살 돋는 애정표현이 한바탕 웃음을 끌어내다가도 "정들자 이별이랍디다"라는 대사가 순간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식이다. 때론 "나이 들어 주책도 유분수지"라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기도 하지만, 세월이라는 순리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2003년 5월 초연 때 박동만과 이점순 역의 손종학(38)과 간담희(42) 두 젊은 연기자가 나이를 뛰어넘는 호연을 펼쳤다면, 오영수(60)와 이혜경(48)은 몸에 새겨진 나이 그대로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다. 조명의 밝기로 사계절을 표현하는 무대장치도 단출하지만 꽤 효과적이다. 특히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계기를 제공하는 촛불 장면은 최소한의 불빛만으로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그러나 두 노인의 사랑 이야기를 에피소드의 나열로 담담하게 이어가는 극 구조는 좀 심심한 면이 있다. 능청 맞은 박동만의 대사와 노년의 애틋한 애정만으로 채우기에는 1시간 40여분은 꽤 긴 시간이다.
극단 오늘이 창단 1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마지막 작품. 새해 1월 23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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