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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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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

입력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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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대부분 죽는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의 삶은 비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나고,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불치병, 교통사고, 혹은 자살. 우리는 뻔하고 비현실적이라고 하면서도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드라마 ‘아일랜드’의 대사 한 구절처럼, 우리는 어쩌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불쌍해서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는 마치 현실의 사랑처럼, 매혹적인 비극의 주인공이었기에 눈길을 보냈던 그가 어느 순간 내 심장에 가시처럼 박힐 때가 있음을 알고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을 ‘사랑해서 불쌍’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폐인’이 되어 그의 모든 행동에 울게 된다.

그것은 단지 드라마의 설정이 아灸? 그 설정을 살아가는 사람이 내 눈 앞에서 보여주는 생생한 현실이 내 마음을 뒤흔들 때 가능한 일이다. 마치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무혁(소지섭)의 그 눈빛처럼.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어머니 오들희(이혜영)에게 버림받아도, 심지어 자신이 어머니의 또 다른 아들을 위해 심장을 내놓길 바라는 그 상황도, 무혁의 눈보다 슬플 수 없다. 그는 슬프다. 그러나 그가 슬픈 이유는 죽음때문이 아니라 그가 설정된 자신의 삶을 처절할만큼 예민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혁은 한정된 생을 살기에 자신의 가족도, 자신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여자도 모두 체념해야 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않기 위해 모든 사실을 숨기고 홀로 죽어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차갑고 위악적인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며, 마치 머리에 박힌 총알이 자신을 건드리듯, 누군가 자신이 참고 있던 그 고통들을 건드리는 순간 오직 분노와 광기만으로 감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무혁의 눈은 그의 모든 상황들을 화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날것의 현실로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다.

인생에 대한 허무와 미련을 함께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무혁의 그 눈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이 시청자의 마음에 다가서며, 그런 생생하고 절절한 느낌으로 가득한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 ‘미사폐인’(‘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열광적인 팬)을 만들어내는 처절하고 독한 사랑이야기가 된다.

"손 놓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대천(이영하)의 말처럼, 삶에 대한 희망도, 털어놓을 사람도 가질 수 없는 이의 눈.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 하나에 목숨을 걸 수 있다. 지금의 청춘들이 무혁의 눈에, 비극에 열광하는 것은 그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무혁과 같은 삶에 열광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다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건조한 ‘일상’은 얻지만 그 일상을 살고 싶게 만드는,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랑’은 얻지 못한다. 아마 ‘미사폐인’들은, 혹은 ‘사라지는 것보다는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록스타의 말을 아직도 동경하는 사람들은 무혁의 눈을 보며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미안하다, 같이 죽지 못해서. 나는 이렇게 살아지는구나. 언젠가는 너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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