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그렇게 개그 없이 느끼한 캐릭터로만 사람들을 몸서리 치게 만드는 건 저금통에 입금 없이 출금만 하는 거랑 똑같아. 이대로 가면 내년 1월이면 너 인기 급속히 꺼질 수 있어."시청률 20%를 넘기며 승승장구 중인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의 23일 방송분 리허설 현장. 이창태 책임PD가 "본능에 충실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초절정 느끼남 마가린 3세’ 리마리오(이상훈)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이 PD의 등 뒤 유리창에 붙은 ‘지금 나의 개그는 신선한가? 아이디어가 빛나는가? 최선을 다 한 것인가?’라는 표어가 유난이 생생하다.
시청률 부진, 멤버 이탈, 잦은 시간대 변경 등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며 존폐의 위기에 몰렸던 ‘웃찾사’의 약진은 바로 그 물음에서 출발했다.
10월 가을개편 때부터 ‘웃찾사’를 맡은 이창태 PD는 가혹했다. 불과 두 달 만에 기존 13개 코너 중 ‘그런거야’ ‘단무지 아카데미’를 뺀 나머지 10개를 퇴출시키고 ‘비둘기합창단’은 리마리오를 투입해 ‘개혁’에 나섰다. 인기를 끌던 럭셔리 강(강성범)과 문세현에게는 ‘휴지기’를 주었다. 그렇게 두 달, 새로 투입된 ‘그때그때 달라요’ ‘택아’ ‘뭐야’ ‘행님아’ 등은 숱한 유행어를 낳으며 ‘웃찾사’의성장 동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의 매서운 손속을 보고 있노라면 "교양PD로 입사해 다큐멘터리를 찍다 그냥 회사가 시키는대로 ‘인기가요’ ‘솔로몬의 선택’을 연출했고 코미디 프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말이 얄밉게 느껴질 정도다.
시간대 변경도 이번에는 적중했다. ‘가족시간대’여서 소재 등에 제약이 따랐던 일요일 오후 5시에서 목요일 밤 11시로 자리를 옮기면서 30, 40대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개 코미디의 특성상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관성에 빠지지 않고 계속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스타로 성장한 출연자들이 1주일을 몽땅 투자해야 하는 공개 코미디에 지금처럼 전력투구 할 수 있을까. 모두 ‘웃찾사’가 짊어져야 할 과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그런거야’의 김형인
‘그런거야’의 얄미운 고참, ‘택아’에서 가망 없는 복서를 조련하는 관장, ‘뭐야’의 중간 보스. 지금은 ‘웃찾사’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멤버지만 6개월 전만 해도 김형인(23)은 맡은 코너가 없어 부산 공개녹화에 따라가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그 뿐 아니에요. 택이 형이랑 ‘뭐야’ ‘택아’를 만들어 죽어라 연습한 뒤 사람들에게 처음 보여줬을 때 완전히 쓰레기 취급 당했어요. 예전에 담당 PD님은 그냥 ‘나가’란 말 한 마디로 끝내시더군요."
아이디어 뱅크인 그의 머리에서 나오고 윤택의 개성으로 구체화한 ‘택아’와 ‘뭐야’는 그렇게 사장될 뻔 했다. 그런 상황을 급반전 시킨 건 "멍하니 있느니 그 시간에 아이디어 하나라도 더 생각 한다"는 김형인의 쉼 없는 노력 덕이었다. "혀가 많이 짧아서 발음도 좋지 않고 연기력도 남들보다 못해요. 남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거야’도 소백산 꼭대기에 자리한 37사단에서 복무한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코미디언 되고는 부대에 다시 못 가봤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내돈 내돈’의 윤택
‘택아’의 어리바리하고 뭐든 한 박자 느린 권투선수 지망생. ‘뭐야’에서 "나 돈 없어. 내 돈 내 돈 내 돈…"을 외치는 좀팽이조폭 보스. 잭슨 파이브를 흉내낸 퍼머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윤택(27)의 캐릭터는 잔뜩 과장됐지만 결코 밉지 않다.
"형인이랑 코너를 만들 때부터 ‘대박’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두 캐릭터 모두 시대가 받쳐준 거 같아요. 살기 어려워서 다들 ‘내 돈’이라고 외치고 싶은데 못하니까 저를 통해 대리만족 느끼는 거죠."
실제 윤택의 삶도 ‘내 돈’을 외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삼형제 중 막내인데 형님들과 벤처기업을 차렸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부도 났죠. 하고 싶은 거나 해보고 죽자며 코미디언에 도전했어요." KBS 위성채널의 아마추어 코미디언 프로그램 ‘한반도유머총집합’을 통해 데뷔한 그는 무작정 박승대 스마일매니아 사장을 찾아갔다. "막노동 해서 방세내고, 일 없는 날이면 극장에서 무료 공연하고 밥 한끼 얻어먹고, 그랬죠."
■‘본능에 충실해’의 리마리오
‘눈을 떠보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이 리마리오 이상훈(32)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10월 개편부터 ‘비둘기합창단’에 랭보 정(정찬우)의 쌍둥이 동생으로 나와 느끼한 대사와 눈빛, ‘더듬이 춤’을 선보이며 인기 절정에 올랐다. 그래서 요즘 하루 4시간밖에 못자는 강행군의 연속이다. "그래도 밤 업소는 안 나가요. 무대에 서는 게 행복할 뿐 헤퍼지긴 싫어요."
하지만 그에게도 긴 무명 시절이 있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 91학번이에요. 대학 졸업하고 여러 극단을 떠돌며 연극배우 생활하고, 사업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컬투(정찬우, 김태균) 형님들 소개로 2003년 ‘웃찾사’ 게스트로 잠깐씩 얼굴 비췄어요." 그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힌 건 정찬우의 한 마디였다. "무명배우로 사는 것보다 어느 정도 인지도를 높인 뒤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어떠냐, 그 첫 계단은 내가 가르쳐 주겠다, 올라가는 건 네 몫이다, 라고 하더군요." 실제 성격은 차분하고 냉정한 편이라는 그는 "요즘 길 가다 ‘너무 느끼해’라고 말하는 사람 보면 내 연기력에 깜빡 속은 거라서 정말 기분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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