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0일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내린 한승주 주미 대사의 양복 주머니엔 신문이 꽂혀 있었다.‘새 시대로 접어든 한국 외교’라는 제목으로 한 대사 부임에 따른 한미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짚은, 큼직한 기사가 실린 이날자 뉴욕 타임스였다.미국의 유력지가 이례적으로 한국 대사를 조명할 만큼 노무현 정부 출범 후의 한미관계는 비틀대고 삐걱거렸다. "태스크 포스라는 생각으로 워싱턴에 왔다"는 한 대사의 부임 일성은 그런 한미 관계를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할 주미 대사의 버거운 임무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8개월 뒤. 워싱턴은 ‘한미 관계의 현안’보다는 ‘유엔 사무총장 도전’이 부각되는 신임 주미 대사 내정 소식을 접하고 있다.
한미간의 얽히고 설킨 현안을 조율할 주미 대사 임무의 본령이 뒷전에 밀릴 만큼 한미 관계는 튼튼한 반석 위에 올라선 것일까.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 대사의 종착지는 유엔이고 당신 나라는 거쳐가는 정류장"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과 미국이 허물없는 사이가 됐을까.
아니다. 한 대사와 많은 정부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양국 관계가 비탈길을 올라섰다는 평가이지만 다시 발을 헛디뎌 내리막길을 걸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주미 대사를 경력을 쌓기 위한 자리로 여길 만큼 한미 관계가 한가로운 상황인가"라는 한 외교관의 반문은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역설하고 있다.
주미 대사는 결코 한 개인의 높은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파트 타임’ 자리가 아니다. 한 순간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풀 타임’의 업무가 홍석현 주미 대사 내정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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