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데까지 왔다. LG카드 채권단, 그리고 LG그룹 이제 어느 쪽도 물러설 여지가 없는 벼랑 끝이다. 양측은 협상 마지노선이라는 연말을 불과 열흘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LG카드 청산’을 담보로 위험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1년 전 상황의 재연이기도 하다.◆ 통첩 시한은 넘겼다
LG카드 채권단이 LG그룹에 통첩한 추가 증자 답변 시한인 20일. LG측은 오전부터 "증자 불가" 입장을 조금씩 흘리다가 이날 오후 공식적인 증자 거부 입장을 채권단에 전달했다. 내심 최소한 증자 금액을 낮춘 ‘수정 제안’을 하지 않겠느냐고 기대 섞인 예상을 했던 채권단에게는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연초에 비해 LG카드의 경영 사정이 많이 호전된 만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당초 예측과 달리, 양측의 대립은 또 다시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LG카드 청산 압박’에 미동도 않은 채 LG측이 완강한 버티기에 나서자, 채권단은 LG그룹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를 꺼내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고 나섰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청산으로 갈 경우 LG 계열사에 대한 금융 제재나 대주주 부당내부거래 검찰 고발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실효성 없는 엄포성 성격이 짙다는 것이 중론이어서, 채권단의 입지도 그리 넓지는 않은 상황이다.
◆ 협상 여지는 있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LG카드 증자의 데드라인을 연말로 공식화하고 있다. 연내 LG카드 주총(28일) 및 이사회(29일)를 통해 증자 결의를 하지 않으면, LG카드 채권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연쇄적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에 대한 중도 상환 요구(레이팅 트리거 조항)가 잇따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LG측이 추가 증자에 동참해 연내 증자 절차를 밟지 않을 경우 자본 잠식에 따른 상장 폐지는 물론 LG카드의 청산 수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LG카드 청산은 채권단이나 LG그룹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채권단이 LG측에 연일 청산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LG카드 대주주로서 채권단 역시 금융 시장 혼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더러 청산에 따른 직접적인 손실 또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연초 미봉책의 해법을 내놓아 화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금융 당국 역시 LG카드 청산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극한 대립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LG카드가 청산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협상의 관건은 총 1조2,000억원의 증자 필요액을 채권단과 LG측이 어떻게 분담할 것이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끝까지 버텨야 단 얼마라도 증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 아래 양측이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관측이다. 내년 초로 증자 결의가 넘어간다 해도 당장 LG카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많아, 일각에서는 양측의 줄다리기가 해를 넘길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박해춘 LG카드 사장 회견
박해춘 LG카드 사장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본사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과 시장, 그리고 해외투자자 모두가 LG그룹의 증자 참여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며 LG그룹의 증자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_ LG카드가 청산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나.
"너무나 불행한 사태가 전개될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LG카드에 투자한 해외 투자자들도 피해를 입는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LG그룹의 협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협상이 잘 되리라고 본다."
_ 협상이 잘 될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LG그룹 입장에서도 증자 참여가 유리하다. 증자 참여 후 LG카드가 정상화하면 LG그룹은 출자액 전액을 회수할 수 있다. 도덕적, 법률적 책임 여부를 떠나 증자에 참여하는 것이 이익이다."
_ 해외의 시각은 어떤가.
"최근 메릴린치가 4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LG카드 정상화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해외 뿐 아니라 국내 한 포털사이트의 여론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가 ‘LG그룹이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시장 해외투자자 모두가 LG그룹의 증자 참여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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