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20일 마카오의 주권이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됐다. 1887년 청(淸)과 포르투갈의 조약으로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정식 식민지가 된 지 112년 만이고, 1553년 포르투갈이 이 지역의 실질적 사용권을 인정받은 때부터 헤아리면 446년 만이다. 이로써 마카오는 1997년 7월 영국에서 반환된 홍콩처럼,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가 되었다.마카오는 중국 난하이(南海) 주장(珠江) 유역의 마카오반도와 타이파·쿨로아네의 두 개 섬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중국어로는 아오먼(澳門)이다. 주도(主都)는 마카오반도의 마카오시(市). 주민 대부분이 광둥(廣東) 출신의 중국인이어서 일반적으로 광둥어가 사용되고, 이 밖에 베이징어, 포르투갈어, 영어 등이 통용된다. 본디 광둥성 샹산현(香山縣)에 속해있던 마카오는 1553년 그 곳에 발을 들여놓은 포르투갈 상인들이 광둥의 중국 관리로부터 도시 건설 허가를 받은 이래 포르투갈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영국이 홍콩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까지, 기독교를 비롯한 유럽 문물은 거의 마카오를 거쳐 동아시아로 흘러갔다.
당초 이 지역에 대한 영토 주권까지는 욕심내지 않았던 포르투갈은 영국이 중국과의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할양받자 덩달아 중국을 압박해 식민지로 편입시킨 데 이어,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가 없던 1951년에는 헌법에 마카오를 해외주(海外州)로 명시해 아예 본국 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러다가 중국과 포르투갈의 국교가 수립된 지 7년 만인 1986년 베이징에서 반환협정이 체결돼, 새 천년을 바로 앞둔 1999년 오늘 중국이 마카오의 주권을 회복했다.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金大建)이 10대 때 그 곳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에서 신학을 비롯한 서양 학문을 배운 터여서, 마카오는 한국 기독교사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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