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 선생님인천생. 연세대에서 상담교육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 경성고 전문상담교사로 재직하고있다. ‘나도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등의 저서가 다수 있다.
인터넷에서 ‘바퀴달린 집’이라는 아이디를 즐겨 쓰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필자의 부모는 미군부대로 통하는 철길 옆에 ‘하꼬방’이라 불리는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미군부대 물건 장사를 했다. 부대찌개의 재료가 되는 부대고기, 씨레이션이라고 불리는 미군 비상식량 통조림, 버터, 마가린, 식용유 등 돈이 되는 것은 모두 사고 팔았다. 허가 없이 지은 하꼬방인지라 그곳에서 장사를 했던 팔년 동안 일곱 번의 철거를 당했는데, 쇠망치에 맞아 집이 폭삭 주저앉을 때마다 어머니는 판자더미 위에서 서럽게 울곤 했다. "우리 집은 왜 부서져야 되지? 가난해서?"
그러나 다음 날에는 아버지가 부서진 집을 일으켜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새집을 지었다. 아버지는 쇠바퀴를 사다가 집의 네 귀퉁이에 달았다. 구청에서 여덟 번째 철거반이 왔을 때 아버지는 말했다.
"여보시오. 우리 집은 바퀴가 달려 있어서 철거하러 갔더니 없어졌더라고 높은 분들께 아뢰시오."
철거반도 감탄했는지 발길을 돌렸다. 부모님은 집을 복구하도록 도와준 사람들을 불러서 막걸리 잔치를 열었고, 도도한 흥취에 어린 나도 행복하게 취했었다. 가난과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 부모님이 어찌나 크게 보이던지…….
그 후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네티즌 검색어 2,3위를 ‘웰빙’과 ‘로또’가 차지하고, 서점가에서는 ‘부자아빠 되기’, ‘10억 만들기’와 유사한 제목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돈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부풀다 못해 터질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사실 가난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배고픈 것’이라고 하셨다. 부모가 죽어도 밥은 먹어야 운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가난’은 죄가 아니고, 어린 자녀들을 슬픔과 좌절로 이끄는 주된 요인도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초 · 중 · 고 학생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지와 대면상담을 통해 인터뷰를 했었는데, 놀랍게도 ‘가난한 부모가 실망스럽다’고 답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마?" 하겠지만 사실이다. 대신 ‘화목하지 못하고 부부싸움을 할 때’, ‘자녀를 믿지 못하고 통제와 강요를 일삼을 때’, ‘자녀 중의 어느 한 쪽을 편애할 때’, ‘폭력을 휘두를 때’, ‘자녀의 요구를 무시할 때’, ‘그 밖의 인격적 결함을 보일 때’ 부모에 대해 가장 실망한다고 아이들은 털어 놓았다.
어째서 아이들은 가난한 부모에게 실망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은 생존을 위협하는 못된 놈이지만 아이가 걱정한다고 나아질 것도 아니오, 돈벌이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지는 것이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힘내세요. 아빠, 엄마~!" 아이들은 배우지 않고도 격려와 성원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아이들은 부모의 탐욕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부모님이 늘 도덕적인 사람인 줄 믿었는데, 철이 들면서 부모님이 가진 욕심과 이기주의를 발견한 순간 어처구니없이 믿음이 깨져 버렸다."(남고 3학년생)
"별로 높지도 않은 지위와 재산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아버지를 경멸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머리 숙이고 사는 바보 같은 여자……"(여고 3학년생)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어른들은 오염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기성세대인 어른들도 투명한 동심을 간직하며 살던 때가 있었다. 어른들이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못내 그리워하면서도 쉽사리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온 과거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 두렵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비양심적, 비도덕적으로 살아온 과오를 그대로 인정하면 마치 인생의 공든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방어본능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일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두렵기 때문에 자신의 참모습을 대면하려 하지 않고, 바람직한 모습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타인의 잘못된 점만을 꼬집어 비난하고 깎아 내리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그러나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인생 과업이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냐"라고 누군가 필자에게 물었을 때, "그래, 난 안 난다"라고 거짓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럴 리야 있겠는가. 다만, 지난 과오를 털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에 그런 대답을 한 것일 뿐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 늘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이것이 상담학에서 말하는 자아의 참모습을 대면하는 개방적 자세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이 지면을 통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는 모르나, 소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서 작으나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한 행복감을 공유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첫 꼭지를 마친다. sir9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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