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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편집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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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편집부문

입력
2004.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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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부문 '빈 서판' 김한영씨/ "문학같은 과학책에 매료돼 번역""스티븐 핑커의 과학책은 대단히 문학적입니다. 쉽게 풀어서 번역하느라 문장의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본성과 양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갈무리한 역작 ‘빈 서판(書板)’의 번역자 김한영(42)씨는 핑커를 주저없이 "천재"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년 넘게 미국 MIT 교수를 지내고 지금 하버드대에서 언어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을 가르치는 핑커는 일찌감치 전공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2년 낸 ‘빈 서판’까지 4권의 저술이 모두 베스트셀러이다.

김씨는 핑커의 그 책들을 몽땅 국내에 소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핑커와의 인연은 노암 촘스키의 언어이론을 소개하는 ‘언어본능’을 1996년 공역하면서 시작됐다. ‘어려운 주제를 누구에게나 녹녹한 읽을 거리로 맛깔스럽게 빚어내는 재주’에 매료된 그는 그 뒤로 핑커의 저술들을 번역해야겠다고 작심했다. 최근작 ‘빈 서판’의 번역도 그가 출판사에 저작권을 문의하고, 책의 가치를 설명한 결실이다. 핑커는 이 책에서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과학은 ‘빈 서판’이 그릇된 이론임을 갈수록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번역본으로 900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의, 그것도 진화심리학이라는 녹록치 않은 분야의 책을 4개월 만에 "전혀 어려움 없이" 옮긴 것은 전작 번역에서 이미 "그의 문체에 익숙한" 덕이다. 그는 "핑커의 문장은 긴박한 호흡으로 이미지나 개념을 함축해서 제시하는데 문화나 지적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약간 설명조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 책이 대중서로 나왔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한영씨의 과학번역도 이 대목에서 빛난다. 자칫 딱딱하고 생경할 대목들이 그의 손끝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나 상황으로 맞춤 맞게 옮겨진다.

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면서 언어학과 영문학에도 관심 가졌던 그는 핑커의 책을 비롯해 ‘본성과 양육’ 등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진화심리학 분야 전문번역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더 적성에 맞는 건 문학작품 쪽"이라고 한다. 학원 영어강사를 하다 1997년부터 전업 번역가로 나서 매년 6, 7권 정도의 영어권 책을 옮기고 있다. 창작에도 관심이 생겨 늦깎이로 서울예대에서 공부한 그는 "물리학, 철학 등 특정분야의 전문번역가가 양성돼야 한다"며 "3년쯤 뒤에는 소설 창작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심사평/ 인간행동 ‘환경 결정론’ 반박 생경한 과학개념 쉽게 풀이

최근 사람의 유전자 수가 2만여 개에 불과해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 등 벌레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과학자들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유전자 수가 추정치인 10만 개에 크게 못 미치는 3만 개로 드러났을 때, 한 번 크게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전자 수로 사람과 하등동물을 구분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해묵은 ‘본성 대 양육’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선천론과 그 반대로 환경(양육)과 관계가 깊다고 주장하는 경험론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 수가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본성보다 양육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한 환경 결정론을 반박한 대표적인 저서가 이 책이다. 스티븐 핑커는 현대과학, 이를테면 인지과학 신경학 진화심리학 등의 성과를 총동원해 ‘빈 서판’ 이론, 곧 인간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물론 그는 본성 쪽을 일방적으로 옹호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우러진 900쪽의 만만찮은 내용이 쉬 읽히는 데는 탁월한 번역솜씨도 한 몫을 할 것 같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

■ 편집부문 '한국생활사박물관' 강응천씨/ "100만년史 박물관, 책속에 옮겨"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가 지난 8월 12권을 끝으로 완간됐고, 편집팀은 해체돼 제 갈 길을 갔지만 여전히 13·14권을 내야 할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살고 있죠. 그냥 죽을 때까지 ‘한국생활사 박물관’ 편집 주간 강응천으로 남고 싶습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100만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생활사를 6년에 걸쳐 연인원 400명을 투입, 입체적으로 되살린 사계절출판사의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이 간단치 않은 작업을 2명의 편집자, 디자이너 3명, 사진작가 1명으로 꾸려진 팀과 함께 완성한 편집주간 강응천(41)씨는 "집집마다 한 권씩은 꽂혀 있는 책을 만들려 했다"며 "독자들이 ‘생활사박물관’을 통해 각각의 가슴에 박물관 하나씩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저자의 원고에 기댄 여느 책들과 달리 ‘편집의 힘’이 돋보이는 책이다. ‘박물관을 책 속에 고스란히 옮긴다’는 기발한 포맷이 그렇고 670여 점의 그림, 1,740여 컷의 사진자료와 8,600여 매의 원고를 제대로 디스플레이 한 기술이 그렇다. "한 장을 펼칠 때마다 시각자료를 먼저 배치하고 남은 공간에 텍스트를 배치해 박물관 진열장에 전시된 유물을 감상하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당대의 생활을 되살릴 만한 문헌이 부족하다 보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죠."

작업과정에서 강 주간이 잊지 못할 기억은 6권에 ‘발해’를 포함시킨 것. "자료가 없어서 학술서적도 내기 힘들다는 ‘발해사’를 생활사박물관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고개를 저었죠. 불가능해 보였지만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고 독한 마음 먹고 결국엔 만들어 냈죠." 역사학자인 송호정 한국교원대교수가 ‘책에 실린 그림 한 컷이 박사논문 하나’ 라고 평했듯 편집과정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권은 현대를 다룬 거라서 좀 편하나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데요. 워낙 한국이 데이터베이스 축적이 안 돼 있는 나라다 보니 1980년대 강남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복원한 그림을 그리는데 거실에 걸었던 그림이 뭔지 자료가 남아 있는 게 없더군요."

‘한국생활사박물관’은 다른 한편 책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위협 받고 있는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지표기도 하다. "책이 더 이상 학문 분야에서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고, 학제간 연구를 통합해 새로운 정보를 가공해내는 퓨전작업이 필요해요. 그런 시도가 한국에서는 사실상 처음 제대로 이뤄진 ‘생활사박물관’은 책이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심사평/ 편집서 제작까지 입체적 기획 북디자인계 괄목할만한 성과

‘한국생활사박물관’ 전12권이 5년여만에 완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출간 당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으며, 한마디로 한국 출판계와 북디자인계의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출판의 기본이 저자가 준 원고를 편집과 디자인과정을 거쳐 출판하는 것이라면, 현대의 출판은 출판사가 주체가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흔히 우리가 기획이라 부르는 출판형태이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은 우리 출판역사에서 기획의 수준을 대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높이 살 점은 기획의 입체성에 있다. 편집과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제작이 입체적으로 그리고 교향악처럼 조화를 이룩하고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이 성취한 책만들기의 새로운 가능성은 한국출판사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보아도 좋다.

이 시리즈는 또 시각차원의 새로운 표현기법 개발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은 입체적 책 만들기의 표본으로 삼을만하다. 일러스트레이션 디렉션이라는 장르를 도입한 점도 높이 샀다.

정병규 정병규 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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