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부문 '한국의 전통생태학' 이도원씨/ 옛것에서 찾은 생태학 '온고지신'‘한국의 전통생태학’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쓴 책이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술상, 그것도 학술부문 수상작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45회를 맞는 동안 2, 3명의 공저가 학술부문 저술상을 탄 것도 서너 차례에 불과하다. 이번처럼 20명 이상이 저자로 참여한 책은 처음이다.
우리 전통 속에서 생태학의 원리를 발견하려는 참신한 노력을 담은 이 책을 내는 데는 이도원(52)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공이 크다. 이 교수가 ‘전통생태발표회’라는 이름의 생태학연구발표 모임을 만들어 2002년 2월부터 해마다 3차례 발표회를 주도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3년쯤 전에 ‘경관생태학’이라는 교재를 쓰면서 국내자료를 접했는데, 생태학의 개념이 오래 됐는데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새롭다고 선전求?걸 보고 이건 아니다고 생각했다"며 "미국서 환경공부를 해 나도 너무 우리 전통의 생태개념이나 연구를 모르는 것이 많아 일단 알아야겠다는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에게나 한 다리 건너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발표자들을 모아 매회 5~7편의 전통생태학 관련연구를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모임 경비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연구소의 지원을 받았다. 갈수록 청중이 늘고, 뒤풀이 자리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매번 시간 부족을 답답하게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성과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유역(流域·watershed)이라는 개념은 아마존에서 검색해보면 관련서적이 2,000권이 넘을 정도로 현대 환경학에서 중요하지만, 서구에서 이를 인식한 건 19세기 말부터"라며 "우리는 15세기부터 지도를 그릴 때 이 유역 개념에 충실했다"는 걸 발견하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옛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생태학의 원리를 찾아내려는 글들은 "잘 팔리겠느냐"며 여러 출판사에서 문전박대 당했다. 혼자서 쓴 ‘좀 팔리겠다’ 싶은 책과 함께 출판을 의뢰하면 "생태학 글 모은 건 놔두고, 이 교수 책만 냅시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우여곡절 끝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을 약속했지만, 책이 나오는 데는 1년 반 이상이 걸렸다. ‘전통의 생태원리를 알자’는 모토 외에 발표의 주제가 따로 없던 탓에 일정한 주제를 가진 한 권의 책으로 묶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이 이만한 모양새라도 갖춘 건 순전히 출판사 편집자 노의성씨의 공입니다."
이 교수는 "이번에 다 묶지 못한 글들을 모아 후속편을 내고, 이어 영문판을 발간해 외국학자들에게 우리 전통생태학의 성과를 알릴 계획"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심사평/ 역사 우물서 지혜 긷는 집단연구에 높은 점수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학술 저작이 240종으로 응모작에서 가장 많았고, 뛰어난 저작도 적지 않았다. 근대의 형성과 그 극복에 대한 관심, 그리고 오늘의 현실을 조명하며 미래를 모색하는 시도가 두드러졌다는 점이 주된 특징이다.
특히 논의가 된 것은 강정인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와 이도원이 엮은 ‘한국의 전통생태학’이었다. 전자는 한국의 사회과학이 이 땅의 것이어야 한다는 선언이면서 이를 위한 저자의 오랜 모색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후자는 사라져 가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에서 생태학적 삶의 지혜를 탐구한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최종 수상작이 된 ‘한국의 생태학’은 학제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다수의 공동저작이라는 점에서 다소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와 입장이 어느 면에서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를 포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학술활동에서 집단적이며 학제적인 연구가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선정하였다. 책 전체에 대한 찾아보기가 있었다면 금상첨화가 되어 이 책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이동철 용인대 교수
■ 교양부문 '헌법의 풍경' 김두식씨/ 특권의식 '법조계 풍경' 꼬집어
‘헌법의 풍경’은 김두식(37) 한동대 법학부 교수의 ‘용기’의 산물이다. "법과 시민이 따로 노는 어두운 현실을 뚫고 나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용기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배경 설명 때문에도 이 책은 문제작으로 꼽힐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으로 지금도 ‘법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그가 높은 장벽 안에 스스로를 가둔 법조계의 왜곡된 현실을 비판했다는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 책이 잘못 읽혀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 고발을 하려는 책이 아니다. 이류 실무법조인, 이류 법학교수로 살아온 나의 자기고백"이라고 한다. 고려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군법무관을 거쳐 검사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냈고, 유학생 아내(박지연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를 따라 미국에서 2년간 전업주부 생활을 한 뒤 코넬대 법학대학원에서 유학해 석사학위만 따서 대학강단에 섰으니, 양쪽 모두 ‘이류’라는 것이다.
"헌법, 법, 법률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그는 법과 법률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국가가 선한 존재라면 법이 필요할 리가 없지 않느냐. 국가권력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이고, 법은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괴물화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판·검사, 변호사 등 법률가들의 특권계층화 때문이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전세 등등 일상 곳곳에서 법에 부딪치면서도 일반시민들은 근접하기 어려운 한국의 법조 현실에 대한 고민이 깊숙이 배어들어 있다. "법 전공자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에서 판결문이나 법률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러니까 법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것 아니겠느냐." 때문에 그는 ‘헌법의 풍경’에서 헌법과 법률에 관한 한 일반인들의 무지와 거리감이 법률가의 특권의식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하고 더 쉽게 헌법 정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치중했다. 특히 양심의 자유, 진술거부권,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권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앞으로는 국가권력의 괴물화를 막는 법의 소극적 역할을 넘어서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칼을 쳐서 보습을: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를 내기도 한 김 교수는 "평화주의와 인권이 내게는 영원한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심사평/ 정의·인권 문제에 관한 탁월한 철학 돋보여
한 시대 사람들의 삶의 시간과 공간에 직접 연결되지 않아도 되는 탈시간적 교양서가 있을 수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의 사회적 삶이 제기하는 절실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씌어지는 교양서도 있다.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은 후자의 경우이다. 헌법 인권 헌법재판소 탄핵 등은 금년 한해 한국인의 관심과 궁금증을 유발시킨 뜨거운 화두이자 이슈이다. 그러나 그런 대중적 관심과 궁금증을 충족시킬만한 적절하고도 바른 판단의 안내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국민 대다수는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런 문제에 대해 발언할 자격조차 없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신의 명령’ 같은 절대적인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란 결국 올바른 절차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정의나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에 시민이 당당한 주체로서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국가 법 법률가 인권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태도, 철학 정신은 그 방향이 바르고 토대가 굳건하다. 심사위원들은 ‘헌법의 풍경’이 금년에 나온 교양서 목록의 맨 윗자리에 놓일만한 중요하고도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판단한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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