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64·사진) 회장은 올해 재계의 뉴스메이커였다.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언제나 대서특필됐다. 거침없이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었지만 때로는 첨예한 논란의 출발점을 제공했다. "외국인들이 이제 우리나라를 계획만 있고 실천이 없다는 의미로 나포(NAPO·No Action Plan Only) 공화국이라 부른다. 규제 개혁도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뽑았다."(1월 언론사 인터뷰) "한국은 지금 난파선은 아니지만 구멍이 많은 배다."(6월 모로코 기자회견) "성장이 없으면 분배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장이냐 분배냐를 따지는 논쟁은 무의미하다."(7월 국회 초청연설), "경쟁력과 관계없는 곳에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11월 한국자유총연맹 자유포럼) 올해 그가 한 ‘말말말’들이다.그가 한가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외에도 두산중공업 회장, 국제유도연맹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올해에도 국내에서 잔 날보다 해외에서 보낸 날이 더 많다. 박 회장이 쌓아 놓은 항공사 마일리지는 350만 마일을 넘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가 맡은 일이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만큼 ‘할 소리’를 하는 것 뿐이라는 설명이다.
내년부터 그는 국내 언론 뿐 아니라 국제적인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 회장은 세계 최대 민간경제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으로 선출됐다. ICC는 13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의 국가연합(UN)’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이 국제 사회에서 개진될 여지가 그만큼 더 커진 셈이다. 중국과 일본도 내지 못한 ICC 회장을 우리가 먼저 냈다는 점도 뿌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ICC 회장이라고 해도 박 회장의 관심은 언제나 우리나라에 쏠려 있다. 그는 17일 기자와 만나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백 투 더 베이식’(Back to the Basic)을 주창했다.
-경제가 많이 어려운데.
"지금이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어려운 시기다. 그 땐 해결책이 명쾌했다. 외환유동성만 확보하면 됐다. 이를 위해 외자유치하고 금도 팔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처방도 한 두 가지로 안 된다. 사실 백약이 무효인 상태다. 이런 때일수록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각자가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할 일을 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은 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막힌 곳이 있으면 뚫어줘야 한다."
-내년 전망이 그렇게 불투명한가.
"이러다가 일본처럼 10년 허송세월 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세계적인 경기 상승 국면에서 우리만 하락세를 보이며 고통을 겪고 있다. 바꿀 것은 바꿔야 하는데 국가경쟁력 향상과는 상관없는 싸움질만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재집권을 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더 써야 한다. 성숙한 사회,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해 개혁할 게 얼마나 많은가. 특히 고통스럽더라도 이렇게만 하면 된다는 희망이 제시돼야 한다. "그렇게 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의식이 있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백 투 더 베이식’이 2005년의 화두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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