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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마을숲이야기 - 완주군 안남마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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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마을숲이야기 - 완주군 안남마을 숲

입력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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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은 운장산(1,126m)과 대둔산(878m)에 둘러싸인 만경강 상류이다. 멀리 호남평야를 내려다보고 있다. 원래 높은 산과 너른 평야가 만나는 곳은 큰 기운이 부딪치기 때문에 천기의 변화가 심한데, 그 가운데로 만경강이 파고드니 그 기세가 한층 더 대단할 터. 고산면은 이런 산지의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소향리는 산지의 안쪽에 있다. 예로부터 햇볕이 적게 든다 하여 소양리(小陽里)라 부르다가 최근에 소향리(小向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런 소향리에도 산세가 부드러워 마치 기러기가 남쪽을 향하여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한 지형에 마을이 들어섰으니, 기러기 안(雁), 남녘 남(南)을 써서 안남마을이라 불렀다. 기러기가 강가에 내려앉는 모습이니 산섦?부드럽고 골짜기의 품은 넉넉하지만, 강바람을 막을 대책이 필요했으므로 옛 어른들은 나무를 심어 강바람을 막고 아늑한 환경을 조성하였다.안남마을의 전통숲은 만경강과 마을 사이에 줄지어 서있는 느티나무숲이다. 나무의 키가 대략 20m 정도이고 수령은 200~300년 정도 인 것으로 보인다. 이 숲은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안남마을의 넉넉한 품을 가꾸면서 만경강의 바람과 범람으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지켜주었다. 이런 숲을 보전할 때에는 썩은 가지를 수술하는 것보다 후계목 조성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숲은 일부가 죽으면서 다시 살아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을과 숲 사이의 포장된 도로에 질주하는 자동차가 예전의 숲과 마을의 관계를 훼손하고 있었지만, 특이한 것은 그래도 숲 속에는 많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남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이 있는데, 전통숲의 느티나무 가지가 도로를 넘어 감나무와 맞닿아서 하늘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특히 기러기의 머리 모습을 한 산자락 밑에 감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감나무들도 도로를 덮으며 도로 건너에서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숲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새들도 도로를 의식하지 않고 감나무에서 느티나무로, 느티나무 품에서 감나무 품으로 넘나들며 노래할 수 있으며, 배가 고플 때에는 남은 감을 쪼아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감나무 밭 한 곁에는 잎이 무성한 대숲이 있어서 새들이 겨울 밤의 추위를 피해 깃들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배치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이 땅에 적응하면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지혜를 깨우친 때문은 아닐까? 사람에 따라서는 우리 조상들이 기러기 형국 앞에 감나무를 심은 것을 미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 땅에 살아오면서 체험적으로 이런 지식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 당시의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지금과 꼭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한 시대의 최첨단 과학이라는 것도 그 다음 시대에는 혁신의 대상일 뿐, 지금 우리가 미신을 타파하고 과학적이라고 믿는 것도 먼 훗날 더 넓은 이해의 폭을 가진 후손들이 볼 때에는 또 다시 미신일 수 있다.

완주군에서는 안남마을뿐만 아니라 여러 마을에서 감나무숲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안남마을과 만경강을 마주하고 있는 동봉마을에도 감나무숲이 마을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비록 안남마을의 전통숲만큼 오래되진 않았지만 주변의 숲과 집 사이에 감나무가 자라 마을과 숲을 연결시켜주면서 많은 생물을 키우고 있다. 이런 완주 땅이 앞으로도 전통숲을 오래오래 지키면서 자연과 우리가 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역사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길 기원한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kecolog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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