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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즐거운 주말-김영진과 극장가기-'역도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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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즐거운 주말-김영진과 극장가기-'역도산' 등

입력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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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을 보고 두 번 놀랐다. 첫번째는 역도산 역의 설경구가 정말 열연을 해서 놀랐다. 두 번째는 그런데도 역도산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어서 놀랐다. ‘역도산’은 실존 인물의 전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의 곤란함을 몸 전체로 웅변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역도산의 삶의 전설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오로지 그 삶의 에너지를 최선을 다해 화면에 옮겨놓는데 집중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그의 삶의 에너지가 추상화 돼버린다.일본에 건너가 스모 선수로 출세하고 싶어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출생신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 역도산이 프로레슬링의 링 위의 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삶의 역정이 오로지 역도산 내부의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등장하는 역도산의 클로즈업은 링 위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권력자가 되고 싶어한 역도산의 야망을 대형 화면에 가득 옮겨놓지만, 그를 상대하는 주변 세상과의 긴장관계는 깊이 해부 되지 않는다.

‘나 역도산이야’라고 외치는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하는 설경구의 모습에서 이 영화는 실제 역도산의 삶과 그 역도산을 연기한 설경구의 괴력에 압도당한 채 소심하게 옆으로 물러나 그의 원맨쇼를 해석하지 않고 그저 관찰만 하고 있겠노라고 결심한 감독의 신중한 선택만을 느끼게 한다. 역도산은 자기 주변을 둘러싼 장벽과 끊임없이 싸우며 최후의 승리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건 그를 위대하게, 비열하게, 가련하게 보이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건 이 영화가 목표한 최종적인 입체적 인간상이었을 것이다.

완성된 영화 ‘역도산’은 그런 입체적 인간의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딱히 기교 상으로 흠 잡힐 게 없는 이 영화에서, 역도산의 삶을 둘러싼 거대한 드라마는 주마간산으로 빠르게 흘러 지나가지만 관객의 심리적 템포는 그에 못 미친다. 이 영화는 역도산과 그 주변관계를 제대로 다룰 여유가 부족했다. 역도산 선생에 대한 존경을 충분히 표현하려는 나머지 그의 위대함 뿐만 아니라, 일그러진 자아를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주변인물들의 시선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곧 관객의 시선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대신, 이 영화는 역도산과 설경구의 그 무지막지한 괴력에 관객을 전염시킨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지만, 관객도 이 전설의 인물에게 가위 눌릴 위험은 적다.

‘블레이드 3’는 최근 할리우드의 주요한 돈줄인 마블 코믹스 캐릭터를 소재로 한 시리즈 영화 가운데 가장 왕성하게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속편이다. 흡혈귀 신화를 매끈한 영상과 특수효과로 버무린 이 통통 튀는 활극은 사무라이 검술과 쿵푸는 물론이고 이종 격투기까지 끌어들인 혼성 액션으로 관객의 얼을 뺀다. 영혼이 없는 싸움기계 같은 등장인물의 면면에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면 직접적으로 시각에 와 닿는 그 자극의 강도에 즐겁게 몸을 맡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물은 지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묘한 시대성과 공간감으로 낯선 환상의 나라에 들어선 현혹감을 불러 일으킨다. ‘엘프’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단골로 등장하는 할리우드산 착한 영화지만 너무 유치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는 어른 관객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부순다. 산타클로스 대신 선물을 만드는 요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때묻은 세파에 물들지 않은 인간의 선량함과 낙천성을 찬양한다. 그것 역시 뻔한 것 아니냐고 불평하신다면 한번만 봐 주시라. 지금은 잠시라도 착하게 살자고 마음 먹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니까.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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