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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석탑 원형복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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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석탑 원형복원 어렵다

입력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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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은 창건 당시 모습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년간의 해체작업 결과, 몇 차례 무너지고 개축한 흔적이 드러나 원형 복원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미륵사지석탑은 백제 무왕(600~ 641)때 창건된 국내 최고(最古), 최대의 석탑. 원래 9층으로 추정되는 탑은 1,40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6층 일부만 남았고, 1915년 일제가 붕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덧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안전진단 결과 붕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자 2001년 10월부터 해체작업을 진행해 현재 2층까지 마친 상태이며, 내년 5,6월께 1층까지 해체 완료할 계획이다.

문화재연구소가 16일 마련한 중간 보고회에서 현장 실무책임자인 김덕문 연구관은 "1915년 일제의 보수 이전에 한차례 이상 최소 2층까지는 수리한 흔적이 확인됐다"면서 "당시 보수는 흩어진 부재들을 대충 끼워 맞추는 선에 그쳤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석탑은 한 번 크게 붕괴됐다가 개축된 후, 다시 조금씩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이나 붕괴시기는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 다만 1915년 이전에 석탑을 보수한 기록으로는 ‘혜거국사비문’(922)에 미륵사 개탑(開塔)에 관한 내용이 있을 뿐이다. 탑 외부에 있어야 하는 부재나 목조건물의 기단으로 쓰인 부재,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 조각 등이 탑 내부에서 발견된 것이 그 흔적이다.

또 탑은 18세기만 해도 7층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 영조(1724~1776) 때 강후진(康候晋)이 쓴 ‘와유록(臥遊錄)’에 "미륵산 서쪽 옛 미륵사 터에 7층 석탑이 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와유록’에는 또 "농부 3명이 장난 삼아 서쪽에 두른 벽으로 탑에 올라가 누워있다"고 해 1층 서쪽면의 석축이 일제가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조선 때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탑의 붕괴원인으로는 지진이나 벼락, 지반의 이상, 탑 자체의 구조적 결함 등 여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삼국사기’는 지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와유록’은 "100년 전쯤 벼락이 떨어져 절반이 허물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문적인 조사결과는 내년 7,8월께 나올 예정.

이번 중간발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탑 창건 당시의 원형을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탑 6층에 쓰인 부재가 1층에서, 1층에 쓰인 부재가 6층에서 발견되고 전에 쓰인 부재를 다시 가공해 쓴 것으로 드러났다. 2층까지 붕괴된 탑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뒤섞여버린 것이다. 부재들의 치수와 형태도 제각각이고, 지붕을 받치는 계단모양의 옥개받침석과 아래층 지붕 위에 얇게 깔아 위층 몸통을 받치는 탑신받침석 같이 중요한 부재들의 크기가 일정치 않다. 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1층이 백제시대의 상태로 남아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원형을 복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에 따라 2008년으로 예정된 탑의 복원작업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복원의 최종 형태에 대해 아직 밑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면서 "이 시대의 예술적 상상력이 동원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남경욱기자 kwnam@hk.co.kr

■ 유홍준 문화재청장/ "미륵사지 동탑은 최악의 복원사례"

"미륵사지 동탑은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6일 미륵사지석탑(서탑) 조사보고회에서 1993년 복원된 동탑에 대해 "군사정권이 전라도 민심수습책으로 졸속 복원한 것으로 언젠가는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3일 간담회에서도 "그걸(동탑)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렸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 조만간 정책적 판단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미륵사지 창건 당시에는 모두 3개의 탑이 있었으나 현존하는 탑은 해체보수중인 서탑 뿐이며, 동탑은 74년 발굴조사에서 기단부가 드러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노태우 정권은 91년 문화재 전문가들이 고증불가 등을 이유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동탑 복원을 결정, 93년 마무리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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