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 시절, ‘책대로’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있었다. 아이들을 훈계할 때에도 공부시간에도 늘 책대로만 하면 된다는 선생님이다. 담당 과목은 정말 재미없는 상업부기.그때는 일년 사이 국제유가가 몇 배씩 오르는 석유파동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산업이 외형적으로 막 팽창해 나가던 시기라 내가 다니던 상업고등학교의 경우 한 반의 스무 명쯤이 이미 졸업 전에 은행에 취직이 되어 나갔다.
한 친구가 면접시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하루 결산을 했는데, 현금 만원이 남는단 말이지. 이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 자네가 갖는가?" 무슨 말씀? 내 친구는 펄쩍 뛰며 자기는 절대 그런 일 없이 윗사람에게 말씀드릴 거라고 대답했다. 다른 선생님들 모두 그의 대답을 칭찬했는데 책대로 선생님은 다른 말을 했다. "야, 이런 천치도. 그거 그렇게 하면 안돼." "그럼 어떻게 해요 내가 가져요?" "그건 더 안 되지." "그럼요?" "책에 나온 대로 해야지. 잡수익 계정에 넣어서."
정말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 순간에도 우리 책대로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 모두 바른생활 얘기를 할 때 상업부기 책대로 말했던 것이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