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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빼앗기는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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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빼앗기는 경복궁

입력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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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무렵 창 밖을 보면, 경복궁에서 지하철 역으로 가는 행렬이 정겹다. 아이 손을 잡고 돌아가는 젊은 부부는 평화롭고 애틋하다. 아들딸을 따라 나들이에 나섰던 시골 어른들 표정은 흐뭇하고, 뭉쳐서 다니는 젊은이들은 귀로마저도 싱그럽다. 내년부터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문화재청이 1월1일부터 경복궁 관람료를 1,000원에서 3,000원으로 턱없이 인상하기 때문이다. 무료였던 7세부터 고교생까지는 1,500원, 절반만 받던 24세 이하는 성인 입장료를 받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창덕궁에 사생대회나 소풍을 갔다. 그러나 창덕궁이 안내원을 따라서만 관람하게 된 후로는 가기가 싫어졌다. 창덕궁 입장료도 700원이 올라 3,000원이 된다. 당국이 창덕궁에 이어 경복궁에서도 시민을 멀어지게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고궁입장료가 영화관람료보다 싸서야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크게 착각하고 있다. 영화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고, 경복궁은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되는 민족의 유산이다. 문화재 입장료는 최소한이 원칙이다.

■ 창경궁과 덕수궁은 현재대로 1,000원으로 묶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입맛은 쓰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볼거리가 많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가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은 창경궁 덕수궁이나 가라는 말인가. 경복궁의 품격과 권위를 높이는 일은 따로 있다. 궐내 수종(樹種)이나 담장, 수로 등이 전통에 부합되는 것인지, 일제 때 훼손된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복원하는 일이 더 급하다. 가뜩이나 갈 곳도 마땅하지 않은 서민에게서 경복궁 관람 기회마저 앗아서는 안 된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상 깊었던 풍경은 ‘모나리자’보다 어린이 교육이었다. 간이의자를 든 어린이들이 명화 앞에 앉으면 선생님이 설명하는 모습이 루벤스 그림보다도 아름다웠다. 위대한 명작을 직접 보며 미술과 역사를 공부하는 모습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우리는 ‘문화 시대’에 어린 학생의 고궁 접근마저 막고 있다. 문화발전은 감각을 세련 시키는 일이며, 감각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몸에 배야 세련된다. 문화재청의 하는 일이 고작 서민과 청소년의 경복궁 접근을 어렵게 하는 일이라니 개탄스럽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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