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가다피(62) 이라크 국가원수의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 가다피(32·사진)는 아버지 만큼이나 정체가 불분명하다.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할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리비아 내부에서 움직이는 정황은 거의 없다.비교적 어린 나이의 사이프가 서방의 주목을 받은 것은 리비아가 지난해말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이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들이 수년에 걸쳐 공들인 작품이었지만, 사이프가 이 과정에 깊숙이 간여했다는 추측이 끊이지 않았다.
서방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온 사이프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가 우리의 미래"라며 "우리도 중동에서 앞서 나가려면 민주주의로 향하는 전세계와 같이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슬람의 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사이프는 아버지와 대조적이면서도 아버지의 유지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인물로 평가된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아버지와 달리 영국 대학에서 교육받아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아버지가 고집하는 치렁치렁한 베두인족 전통복장 대신 최신 유행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즐긴다. 면도하다시피 짧게 자른 머리는 뒤엉킨 덤불같은 우중충한 인상을 주는 아버지와 정반대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을 비롯해 리비아의 정치체제를 개혁하는 각론에서는 조심스러움이 역력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혁명이 아닌 발전을 얘기해야 한다"며 "아버지가 26년간 계속해온 리비아의 민주주의 구상은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이어서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이프가 친 서방적 사고를 지닌 데는 개인적 경험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와 서방과의 갈등이 고조됐던 1995년 그는 스위스 당국이 비자 연장을 거부해 공부하던 제네바 대학에서 쫓겨나는 등 수난을 당했다. 이때 그는 서방에 대한 리비아의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당시 매우 화가 났고 결코 잊을 수 없었다"며 "그러나 분노보다는 리비아를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일절 공직을 갖지 않고 있는 그가 97년 유일하게 ‘자선단체를 위한 가다피 국제협회’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욕 타임스는 그가 권력자의 아들답지 않게 허름한 차를 몰고 있으며, ‘프레도’라는 이름의 백호(白虎)를 비롯, 여러 종류의 기이한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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