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잘 읽지 않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9세기 독일의 철혈(鐵血) 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와 관련된 서적을 뒤적이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예일대 역사학자 폴 케네디 교수가 쓴 칼럼이다. 부시와 가까운 지인이 그에게 이 같은 얘기를 전해주었다는 것이다.케네디 교수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묘미는 부시가 드디어 공부를 하게 됐다는 점이 아니다.
2기 부시 행정부가 첫번째 임기에 비해 조화롭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는 게 포인트다.
비스마르크는 첫번째 임기에서 무쇠와 피로 독일을 통일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 대해서는 전쟁, 국내에선 의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다. 하지만 2기 비스마르크 체제에서 독일은 유럽의 현상유지와 프랑스의 고립을 위해 모든 나라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는 외교를 폈다. 국내적으로도 최초의 사회보장제를 구축하고 유화정책을 추진했다.
부시 행정부도 두 번째 임기에서 원만한 모습으로 변형(Transform)될 지는 미지수다. 대외정책의 방향이 어떻게 변할 지에 대해선 미국의 언론들도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가 처한 내외의 위기적 상황을 보면 일방주의보다는 다자주의, 대립보다는 협조노선를 강화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는 추론들이 나온다. 뉴스위크도 한 분석기사에서 1기 정책의 키워드가 ‘전쟁’이라면 2기는 ‘외교’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래서 인지 부시는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손을 3번이나 잡았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사실 그는 지난번 처럼 ‘Easy man’, ‘This man’이라며 여유를 부릴 처지는 아니다. 선거직후 "정치적 자본을 얻었다"고 선언했지만, 당장 공화당 내부에서 대통령 독주에 대한 견제가 시작됐다.
대외정책은 이라크에서의 차질이 가장 크다. 현재 미국의 최대이익은 이라크로부터의 조기철군이나, 팔루자를 함락시키고도 이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도 유럽의 이니셔티브에 밀려 수동적 처지에 빠져있다.
동북아지역에서는 북한 핵문제 못지 않게 해외미군재배치계획(GPR)이 시급한 과제다. 이 문제에 관한한 일본은 미국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장차 주한미군 사령부를 대체하게 될 지 모를 미 육군1군단 사령부의 일본 내 이전을 거절하고 있다. 미군 재편은 괌과 일본에서 시작해 가까이는 한반도와 대만, 멀리는 아프간 이라크까지를 한 동선에 놓는 게 초점인데 출발점이 정해지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게 다시 한국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이 우리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금은 한미관계 복원을 위한 소중한 기회가 된다. 상원 청문회 등을 통해 부시의 2기 대외정책 노선이 정리되는 내년 초, 그리고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예상되는 상반기 까지는 그야말로 한미관계의 새 이정표가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결정적인 이 시기에 미국을 향해 쓴 소리를 하고, 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부드럽다면서 외교적 성과라도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착시(錯視) 현상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유럽 순방 중에 한국인의 미국적 사고방식을 거론하며 "좀 걱정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한미관계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당국자들을 보고 상당히 걱정하는 편이다.
유승우 국제부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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