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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29> 모과의 ‘네 번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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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29> 모과의 ‘네 번 놀라움’

입력
200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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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내내 흐르던 오페라 아리아들이 가슴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습니다. 영화 줄거리는 일그러진 외모로 학대 받은 한 사람이 자신의 천재성을 광기어린 음악과 사랑으로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눈길이 얼마나 잔인하고 그 상처가 얼마나 사람을 망가트리는지 잘 알겠더군요.영화가 아니더라도 외모지상주의는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한 듯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성형과 화장으로 여자들의 얼굴이 비슷해지고, 취업 때문에 성형을 하는 남자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외모로 인한 불이익이 얼마나 많으면 그럴까 이해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쩨?비생산적인 겉치장에 소모하는 것을 보면 큰 걱정이다 싶습니다. 특히 저는 생산적인 노동이나 가사일 혹은 자연 속에서 흙을 만나는 일은 물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치는 일조차도 할 수 없을 듯이 손톱을 아주 잘 다듬고 꾸미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왜 살고 있는지를 묻고 싶어집니다.

식물 중에도 외모 때문에 소외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식물이 모과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모과에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우선 너무 못생긴 과일이어서 놀라고, 못생긴 과일치고 향기가 너무 좋아서 놀라고, 향기에 비해 맛이 없어서 다시 놀란답니다. 모과가 먹을 수 없는 것은 과육이 석세포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그에 어긋나니 놀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모과나무를 알고 나서 또 한번 크게 놀랐습니다. 그 꽃이 너무도 아름다워서요. 막연히 못생긴 나무의 대명사인 모과나무의 꽃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곱디고운 다섯장의 꽃잎을 가진, 수줍은 새색시의 볼처럼 분홍빛 꽃이 피더라구요. 누구나 모과같다고 하면 화내겠지만 이 꽃을 한번 보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 확실합니다. 열매조차도 더욱이 울퉁불퉁 못생길수록 더 향기가 짙다고 하니 사람이나 식물이나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잘못입니다.

아름다운 꽃 하면 장미꽃을 치지요. 하지만 장미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꽃이야말로 외모지상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장미를 비롯해 봄에 심는 팬지,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서양란 등과 같은 식물들은 야생 식물에서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색깔이나 크기 같은 여러 요소들을 인공적으로 육종해서 만든 화훼 품종입니다. 많은 종류들이 정상적으로 씨앗을 받아 골라 심은 것이 아니라 수술 같은 식물기관의 일부를 꽃잎으로 바꾸어 꽃잎이 많은 겹꽃을 만든다거나 하는 등의 변형을 거치면서 실제로 식물에서 꽃이 존재하는 본래의 목적, 번식의 본성을 잃어버립니다. 꽃을 피우되 결실할 수 없는 그야말로 외모만 치장했지 그 본래 역할을 할 수 없는 슬픈 존재이지요.

설사 이런 인공적인 꽃들은 지구 생태계의 우점종인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다른 역할을 한다고 지극히 사람 중심적인 입장에서 말한다 치더라도 사람까지 스스로를 눈요기로 전락시키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합니다.

첫 눈에는 팬지에 눈길을 주지만 정말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담장 밑에 자라던 소담한 보라빛 제비꽃(팬지는 삼색제비꽃 종류를 개량해 만든 원예종입니다) 한 송이인 것을 보면 사람도 결국은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본질로 평가하는게 맞을 듯합니다. 거기에 향기까지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사동 후미진 골목에는 이승에 소풍을 왔다가 떠난 한 시인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이 있습니다. 모과차가 아주 맛있는 집입니다. 겨울이 깊어 가는데 진한 향이 가득한 모과차 한잔 마시러 가고 싶습니다. 그 향기를 마음 깊은 곳까지 가득 채워와 두고두고 품어내며 지내고 싶어서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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