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소백산맥 자락에 깊이 묻힌 고향에 갔다. 때아닌 비가 내리 퍼붓고 천지간에 안개가 자욱했지만 음력 10월의 마지막 주말이어서 더 이상 시제(時祭)를 미룰 수가 없었다. 재종 아저씨 댁의 재실(齋室) 방은 모처럼 서울에서 조카가 온다고 어찌나 군불을 땠는지 요를 깔지 않고서는 앉을 수가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은은히 밴 메주 뜨는 냄새, 고추 냄새, 나무 연기 냄새가 온 몸을 포근히 감쌌다. 꿈 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따뜻한 하룻밤이었다.■ 무작정 상경해 리어카 야채 행상을 하며 달동네에서 살던 아저씨는 20여년 전 어른들의 부름을 좇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타고 난 강단과 억척으로 보아 그냥 서울에 남았다면 적지 않은 부를 쌓았을 만했다. 그런 성품과 기질은 산골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고작 서너 마지기이던 논을 지금은 스무 마지기로 불렸고, 남의 논까지 합쳐 거의 서른 마지기에 벼농사를 짓고 있다. 외양간에는 송아지를 포함한 네 마리의 소, 창고 겸 차고에는 트랙터와 경운기, 오토바이, 승용차와 RV가 서 있었다.
■ 승용차는 60리쯤 떨어진 소도시의 직장에 다니는 장남의 출퇴근용이었지만 RV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손녀를 승합차가 오는 마을 입구까지 태워주려고 며느리가 산 차였다. 아들·며느리와 같이 사는 집은 다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집마다 어디서 그런 돈이 나오느냐는 물음에 아저씨는 혀를 찼다. "빚이지. 농협 빚이 이자가 싸다지만 농사 지어서 갚기가 쉽나. 그래서 빚이 주렁주렁해. 나는 천성이 맞지 않아 한 푼도 없지만…."
■ 1992년부터 2002년까지의 농촌·농업 종합대책에 모두 82조원이 쓰였다. 이 중 국비는 보조금 39조원, 융자금 23조원이 나갔다. 얼마나 제대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농촌에 거금이 흘러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지난해 말 농가 평균 부채는 약 2,660만원에 이르렀다. 그 빚의 상당 부분이 자식들을 위한 ‘과소비’ 때문임을 농촌에서는 서로 알고 있다. 그렇게 농촌으로 부담이 분산되지 않았다면 도시가 앓고 있는 현재의 신용불량 문제는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농촌 노인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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