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예심 결과, 전체 응모 도서 927종 중 모두 58종이 5개 부문 본심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부문별로는 저술(학술, 교양) 번역 편집이 각각 10종, 어린이·청소년이 18종이다. 출판사별로는 창비와 현암사가 각각 4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사이언스북스 아카넷 한길사에서 낸 책이 3종씩 후보에 올랐다. 2종이 선정된 출판사는 부키 사계절 생각의나무 열린책들 예림당 웅진닷컴 청년사 휴머니스트 등이다. 예심 심사는 이동철 용인대 교수, 정희진 서강대 강사, 정재승 KAIST 교수와 도서평론가 강은슬 이권우씨가 맡았다. 본심은 예심과 다른 심사위원으로 진행되며, 부문별 최종 수상작은 18일(토)자 한국일보에 발표한다.
■ 학술부문 후보작/ 한반도 다룬 사회과학 책 강세
올해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술상 학술 부문 후보작은 사회과학 도서가 강세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책들이 눈에 띈다. ‘21세기 한반도의 구상’은 이런 정세 변화를 정면으로 다루고 나아가 한국의 미래상까지 그려본 책이다. ‘북한연구방법론’은 갈수록 늘고 있는 북한연구의 틀을 점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사다리 걷어차기’는 서구 편향의 학문 태도나 경제개발에 대한 이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들이다. ‘원칙의 윤리에서 여성주의 윤리로’는 ‘자기성실성’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윤리학에 여성주의 시각을 도입하려는 발상이, ‘현대 가족 이야기’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한국 가족의 현실을 분석하는 방법론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심을 맡은 정희진 서강대 강사는 "노동자, 소수자 등의 눈으로 세상을 읽어내려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백낙청 등 지음
동북아시대 구상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국가전략을 모색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우리 사회 내부의 쇄신과 생태 인권 평등의 문제를 두루 다루었다. 동북아의 협력과 공동번영은 발전주의로만 내달릴 우려가 있으므로 21세기의 화두인 생태위기 문제를 동북아시대 구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문제제기 등을 눈여겨볼만하다. 필자로 참여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명지속적 발전’ 등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근대화주의 혹은 발전지상주의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했다.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장,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박명규 박세일(이상 서울대) 백영서 김왕배(이상 연세대) 교수 등 16명의 글이 실렸다. 계간 ‘창작과비평’의 연속 기획을 묶은 책이다. 창비 발행.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강정인 지음
강정인 서강대 교수가 국내 정치학 연구의 서구 편향 실태를 조명하고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보수주의를 비정상적인 것(일탈)이라거나, 부족한 것(부재)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서구중심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냉전 탓에 한국의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반공과 동일시했고 그래서 이념이 빈곤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념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보수주의를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이념과 더 탄탄히 연계하거나, 유교 등 전통적인 사상적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0년 이후 인문학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서구 편향의 학문태도를 극복하자는 논의가 사회과학계로 범위를 넓혀가는 추세를 보여준다. 아카넷 발행.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선진국들이 휘두르는 자유무역의 논리가 경제개발의 역사에서 볼 때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알기 쉽게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혁명을 통해 부강의 기틀을 마련한 영국과 이어 경제 대국이 된 미국. 자유무역의 모국처럼 알려진 영국은 16세기를 전후해 모직제조업을 발달시키기 위해 양 원모 수출 관세를 인상하거나 심지어 수출 자체를 일시 금지하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폈다. 시장 개방의 전도사처럼 된 미국 역시 ‘근대적 보호주의의 모국이자 철옹성’이다. 2002년에 영어로 먼저 출간된 책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부키 발행.
▲원칙의 윤리에서 여성주의 윤리로 /허라금 지음
‘자기 성실성의 철학’을 부제로 단 이 책은 무조건적인 것으로 경험되는 바, 도덕성이 발휘하는 힘의 성격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서부터 유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허라금 이화여대 교수는 기존의 윤리학에서 타자였던 여성의 도덕적 경험이 관계 속의 윤리를 대변한다고 본다. 그것은 하나의 도덕적 정의를 기초할 원칙 찾기에 고군분투했던 근대 윤리학 아래서 침묵을 강요 받았던 다른 목소리이며, 그것을 되찾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윤리의 이름으로 회복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도덕성 해체 담론이 무성하지만 저자는 우리 삶 속에 살아 있는 도덕성의 새로운 근원에 주목해 그 의미를 해명했다. 철학과현실사 발행.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울산에 거주하는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의 부인 18명을 인터뷰해 쓴 독특한 인류학 보고서.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얼마나 오래 일하고 얼만큼의 월급을 받는 지부터 시작해 인터뷰 대상인 여성들을 만난 과정을 소개하는 등 다분히 사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진행되는 글 속에서 여성학 강사인 조주은씨는 가난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나 고졸 정도의 학력으로 전업주부가 된 한국 여성의 초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의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가족제도의 견고한 틀과 남성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거나 아주 느리게 변하는 현실도 읽을 수 있다. 이가서 발행.
▲북한연구방법론 /경남대 북한대학원 엮음
북한연구방법론이 정치하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본격적인 방법론을 모색한 책이다. 북한연구방법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은 물론 그 동안 북한과 통일 연구분야에서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공식간행물과 문헌, 경제자료 연구방법을 제시했다.
나아가 주체사상과 비교사회주의 연구방법, 탈북자 면접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법을 소개한다. 박재규 경남대 북한대학원장은 서문에서 "북한에 대한 냉전적 이해방식이 북한연구에 ‘방법론적 예외주의’ 현상을 초래"해 "지금까지 북한연구에서 방법론은 ‘공백지대’였다"고 출간 의의를 설명했다. 최완규 류길재 경남대 교수 등 10명이 썼다. 한울아카데미 발행.
▲한국의 전통생태학 /이도원 엮음
우리 전통 속의 생태학의 개념과 전통 생태환경 복원연구사업, 전통생태학 복원이 갖는 실천적인 의미 등을 소개하는 글을 모았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지원으로 2002년 5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전통 생태 모임’에서 발표된 연구 논문 21편이 실렸다. 전통 마을 가꾸기 사업을 지도하는 현장 활동가 생태학자 건축학자 화가 등으로 이루어진 전통 생태 모임은 분과의 장벽을 넘어서 전통생태학을 주제로 활발한 학제간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을 모은 이도원 서울대 교수의 지적대로 물질주의, 서구 중심주의, 엘리트주의의 굴레에서 생태학을 자유롭게 하려는 생태학 논의의 지평을 두루 보여주면서 우리나라 생태학 논의의 새로운 장을 열려는 의지를 담았다. 사이언스북스 발행.
▲한옥 살림집을 짓다 /김도경 지음
재미동포 사업가 김영훈(제임스 김)씨의 의뢰로 목수(木壽) 신영훈씨와 도편수 조희환씨, 건축박사 김도경씨 등 장인들이 어울려 1999년 겨울부터 2001년 여름까지 1년 6개월 공사끝에 강화도 산기슭에 지은 학사재(學思齋) 건축기.
현장소장을 맡았던 김도경씨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옛 사대부 집의 격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욕실과 부엌을 입식으로 꾸며 안채에 들여놓고, 대청 마루에 벽난로를 설치하는 등 현대인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든 이 집 짓는 과정을 집터 고르기에서 설계 기초공사 목재관리 치목 조립공사 마감공사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현암사 발행.
▲김충열 교수의 노자 강의 /김충열 지음
국내의 대표적인 노장사상 연구가 김충열 고려대 명예교수가 주요 판본을 비교해 노자사상을 자세히 해설한 책. 김 교수는 1950년대 후반 대만에서 노장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30년 넘게 강단에서 노자와 장자 사상을 강의했지만, 정작 그가 낸 노장사상 연구서는 ‘노장철학강의’(1994년) 한 권뿐이었다. 그가 사실상 처음 낸 본격적인 노자 해설서로 볼 수 있는 이번 책은 초간 노자에 큰 비중을 둔 점이 눈에 띈다. 초간 노자의 의미를 설명한 뒤 내용을 원문 해석 요의로 나누어 자세히 밝혔고, 후반부에는 저자가 노장철학 연구의 줄거리로 삼아온 왕필노자주에 대한 해석이다. 예문서원 발행.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탐색 /이희옥 지음
상당히 자본주의화로 기울어진 중국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혁명 1세대인 마오쩌둥 시대에서 지금 후진타오 시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왔으며 또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가를 살핀 책. 이희옥 한신대 교수는 중국이 표면적으로는 탈사회주의의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체제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침투해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념 변화를 검토해야 중국 사회주의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장쩌민 이후 길을 잃기 시작한 "중국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합리적 핵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났으며, 사회주의로 복귀라는 장기적 전망도 불투명해졌다"고 평가했다. 창비 발행.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 교양부문 후보작/변혁시대 조선후기 연구 많아
출판문화상 저술상 교양부문 후보작에서는 대중적 역사서가 두드러진다. ‘한국사 이야기’는 10년간에 걸쳐 한국사를 민중사적 시각에서 추적한 저자 이이화씨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변혁의 시기였던 조선 후기에 대한 연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향랑, 산유화로 지다’는 조선 후기의 인물을 다룬 책이지만, 그들의 고민이 현재에도 유효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를 통해 요즘 사회를 해독하고자 하는 시도가 읽혀진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책들이 많지 않은"(이동철 용인대 교수) 점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지만 한국사회의 고질인 학벌문제를 철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진단한 ‘학벌사회’가 후보에 들었고, ‘헌법의 풍경’ ‘아부 그리아브에서 김선일까지’같은 경우는 각각 법조계와 이라크전쟁에 무관심한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한국사 이야기 1~22 / 이이화 지음
‘읽히는 역사책’을 표방하며 민중사, 생활사 위주로 반만년 우리 역사를 풀어낸 역작이다. 집필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원고지 2만6,000여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한국통사를 완결한 점도 출판계와 학계에서 큰 의미를 갖거니와 그 모든 일을 저자 혼자서 감당했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문헌사료 고증은 물론이고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해 현장성을 살렸고, 딱딱한 논문체를 버리고 이야기식으로 쉽게 풀어 서술함으로써 역사서의 대중화에도 한몫 했다. 고조선을 ‘조선’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각각 ‘조·일전쟁’과 ‘조·청전쟁’으로 표기하는 등 용어 하나하나에도 객관을 유지하려고 한 점도 특징이다. 한길사 발행.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 이덕일 지음
개혁과 보수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의 열망과 좌절 등의 내면을 담은 인물사이자, 조선후기 시대사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봉건체제의 모순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18세기 후반, 사회의 변화를 꿈꾼 다산 정약용과 그 형제들은 지배권력의 반동과 박해에 맞서 진통을 겪으며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들이다. 정약용은 학문으로, 정약전은 자연 및 생태학으로, 정약종은 천주교로 폐쇄된 사회의 돌파구를 찾았다. 저자의 조선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 저자는 사료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까지 상상력을 발휘하며,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의 삶을 재구성했다. 김영사 발행.
▲임진왜란 해전사/ 이민웅 지음
문화계에 이순신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수적으로 많아진 가운데, 이 책은 ‘이순신 신화’의 허구성을 공격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역사적 실체로서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객관적으로 조명한 점이 돋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난중일기 임진장초 이충무공전서 난중잡록 새미록 서애집 등 방대한 사료를 참고해 임진왜란 해전사를 전체적 맥락을 아우르며 객관적으로 고증했다. 합포해전의 장소가 마산 앞바다가 아니라 진해 연안이었다거나, 명량해전에서 사용했다는 철쇄(鐵鎖)가 일본 학자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며 굳어진 허구라고 밝혀내는 등 역사적 사실의 오류를 시정한 것은 저자의 진지한 탐구가 빚어낸 성과이다. 청어람미디어 발행.
▲헌법의 풍경 / 김두식 지음
왜곡된 법조문화를 비판적 시각에서 다룬 책이다.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저자가 "법과 시민이 따로 노는 어두운 현실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용기"라는 생각에서 법조계의 현실을 고백했다는 점에서 그 쓴소리는 더욱 신랄하다. 저자는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국민을 통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국가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절대로 침해되서는 안될 기본적 인권의 문제, 앞으로 법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대두할 차별 받지 않을 권리인 평등권 등 헌법정신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교양인 발행.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 정수일 지음
아랍계 필리핀인 무함마드 깐수로 위장한 북한공작원으로 구속됐던 정수일의 옥중편지 모음집이다. 1996년 체포된 후 2000년 8월 석방될 때까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았다. 일제 압박을 피해 이주한 유민의 후손으로 옌볜에서 보낸 청년기, 광복 후 중국 외교관으로 봉직하다가 북한으로 환국했고, 남한에서 대학 강단에 서고 간첩이라는 혐의로 옥중에 갇히기까지, 아내에게조차 숨겼던 자신의 인생역정과 회한을 덤덤히 털어놓는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의 인생 자체가 소설 같다. 옥중에서도 문명교류학을 정립하는데 힘을 쏟았던 그는 "과욕과 성급함을 버리고 황소처럼 한걸음한걸음 나아가겠다"며 학자로서의 풍모도 드러낸다. 창비 발행.
▲향랑, 산유화로 지다/ 정창권 지음
‘열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17세기 후반의 여인 향랑의 사건을 추적함으로써 조선후기 가족사의 변화과정과 가부장제의 기원을 파헤치고 있다. 향랑은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혼한 뒤, 사회가 강요하는 개가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 저자는 향랑의 자결사건에서 가정폭력 이혼 재혼 등 다양한 가족 내 갈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며, 향랑을 조선 후기에 가부장제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양으로 뒤집어 해석한다. 조선 중기까지는 가족관계에서 남녀의 지위가 동등했으나,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혼란해진 사회 체제의 회복을 시도하면서 가부장제가 확립됐다고 주장한다. 소설적 기법을 차용해 17세기 서민층 가족생활사를 흥미롭게 전개했다. 풀빛 발행.
▲학벌사회 / 김상봉 지음
겉핥기식 현상 논의에만 그쳤던 ‘학벌’문제를 학문적으로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특히 학벌과 학벌사회의 문제를 철학적 탐구의 주제로 삼아 인간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학벌 타파를 주장함으로써, 학벌 문제에 대한 논의의 차원을 달리하며 심도 있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최고 학벌을 얻기 위해 일류대 진학만을 목표하는 사회풍조를 ‘학벌사회’로 규정하고,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우리사회에서 일부 학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고 지배되는 현상을 짚어가며, 그 대안으로 서울대 학부 폐지론을 옹호하고 다양한 쟁점을 검토했다. 한길사 발행.
▲김선자의 중국신화 이야기/ 김선자 지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중국 신화를 소개하는 책이다. 혼돈 상태의 하늘과 땅을 분리한 우주거인 반고, 인류의 시조가 된 여와와 복희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창세신화와 홍수신화, 영웅신화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시대에 따라 신화의 변천상도 아우르고 있다. 중국을 지배한 한족 이외에도 소수 민족의 신화도 비중 있게 다루고, 남성 위주의 신화를 여성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노력한 점도 돋보인다. 신화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소개하면서 중국의 문화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 신화를 매개로 중국 문화를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카넷 발행.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한영식 지음
딱정벌레에 관한 안내서. 10년 여를 딱정벌레에 미쳐 살아온 아마추어 곤충학자인 한영식씨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200여종 딱정벌레를 땅 꽃 잎 나무 물속 밤하늘 등 서식지별로 나누어 습성과 채집법, 사육법 등을 전수해준다. 323컷의 생생한 컬러사진도 압권. 적을 만나면 고열의 가스를 내뿜는 폭탄먼지벌레나 하루종일 먹고 배설하기를 반복하는 남가뢰, 죽은 쥐를 파묻어 놓고 먹이로 삼는 송장벌레 등 저자가 생생한 경험으로 풀어가는 딱정벌레 왕국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곤충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집단서식지에 인간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오히려 곤충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도 보태고 있다. 사이언스북스 발행.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 슬라보예 지젝·도정일 등 지음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을 출발점으로, 전쟁과 테러리즘, 그리고 평화에 대한 국내외 지성인 20여명의 성찰을 다각도로 담아냈다. 이 책은 이라크전쟁과 전쟁을 유발한 미국 패권주의를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지점에서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21세기 폭력인 테러의 한가운데에 선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 성찰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어 호소력을 발휘한다. 정당성 여부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이라크 파병문제를 짚는 등 전쟁과 테러에 의한 희생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우리사회의 무신경함을 지적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당대비평 특별호로 발간됐다. 생각의나무 발행.
정리= 문향란기자 iami@hk.co.kr
■ 번역 부문 후보작/번역 불구 원전 중량감 충실히 전달
동ㆍ서양의 묵직한 철학 미학 역사 신화류가 나란히 본심에 올랐다. 역사의 이면을 고찰함으로써 근·현세사의 비의를 탐구하는 비교적 근년의 노작들도 고전의 반열에 든 여러 작품들과 경합하게 됐다. 이들 책은 대부분 원전의 방대한 분량과 광범위한 영역, 난해한 내용 등으로 출판사나 역자들이 좀처럼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던 것들이었다는 평이다.
그만큼 이 책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길게는 10여년, 짧게는 수 년에 걸쳐 이뤄낸 노작들이다. 해서, 번역의 문장이며 정돈된 내용, 깊이 등 면에서 어느 책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원전의 중량감을 너끈히 받치고 있다는 반응이다. 출판대상의 여느 심사부문 못지않게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희망의 원리 /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마르크시즘의 비판적 세계관과 메시아적 희망을 접목시킨 당대의 석학 에른스트 블로흐의 대작. 1949년에 완성된 그의 저술은 1만3,000매에 이르는 원고 분량 못지않게 신비롭고 난해한 내용 때문에 55년이 지난 최근까지 그 의미가 완전히 해석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의 평생의 사유가 집약된 이 책은 네오마르크시즘과 신학 문학 음악학 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탈근대 이후’를 사유하려는 철학자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의 사상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소수의 몇몇 국가에서만 번역되었던 이 책이 우리 글로 완역돼 나온 것은 한신대 교수인 번역자의, 연구를 병행한 10여 년의 작업으로 가능했다.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발행.
▲빈 서판 /스티븐 핑커 지음
하버드대의 저명 언어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아이디어와 그것의 도덕적 감정적 정치적 특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는 많은 지식인들이 ‘빈 서판(마음은 타고난 특성이 없다)’ ‘고상한 야만인(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 속에서 타락한다)’ ‘기계 속의 유령(우리 각자는 생물학적 제한과 상관없는 선택을 하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이라는 세 도그마를 옹호함으로써 인간 본성의 존재를 부정했는지 규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카툰을 삽입해 난해한 주제와 내용을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세계 명작동화나 시 영화 등을 다양하게 활용, 평이한 설명으로 독자들의 흥미와 이해를 돕고 있다. 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
▲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등 지음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고색창연한 마차를 타고 의회 개원을 위해 웨스트민스터로 향하는 모습을 두고 각종 매스컴은 ‘천년의 전통’을 선전하지만 실은 이 ‘전통’이 19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각양각색 격자무늬 천의 킬트 역시 실제로는 18~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누구나 믿었던 것의 실체와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관점 및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오랜 전통의 허상을 까발림과 동시에 국가의식이나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임을 실증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책이 출간된 이래 ‘전통의 창조’와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용어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이 책은 사회인류학과 문학 등 인접 학문분야 연구에 촉매 역할을 했다. 박지향 장문석 옮김. 휴머니스트 발행.
▲대한계년사 /정교 지음
갑오개혁을 통해 스스로의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1894년부터 국권상실에 이른 1910년까지 대한제국 말기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저자인 정교는 수원판관 장연군수 중추원의관 등을 거쳐 독립협회 간부로 활동한 인물. 그는 당시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일어난 시대의 격변을 관보와 각종 신문 등 자료를 인용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소나 주장을 함께 싣는 방식으로 성실히 기록했다. 책은 순 한문 강목체(주제별 분류)로 서술됐다. 각종 외교문서와 상소문 공문서 등 다양한 문체가 등장해 번역을 맡은 학자들이 4년여 동안 해독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결과 방대한 책의 내용은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옮겨졌고, 용어나 인물 사건 등에 대한 상세한 주석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평이다. 조광 변주승 이철성 김우철 이상식 옮김. 소명출판 발행.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주지하듯 ‘왕오천축국전’은 현존 최고의 우리 책이자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를 포함,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보고 들은 이야기로 된 ‘왕오천축국전’은 한자 6,000자에 10쪽의 단출한 분량이지만 역주자는 이를 400쪽에 이르는 상세한 주석과 해제를 달아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배려했다. 책에는 죄를 지어도 돈으로 벌금만 내면 해결되던 천축국의 이야기 등 당시 중앙아시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고, 이역에서 쓸쓸한 밤을 보내는 혜초의 심정을 담은 그의 시도 실려있다. 역주자는 혜초가 언급한 나라들의 왕조사와 문명사, 그리고 현재 그 곳이 어떤 지역인지까지 확인하는 성과를 이 책에 담고 있다. 정수일 역주. 학고재 발행.
▲에다
‘에다’는 북유럽 게르만 민족의 신화집이다. 이 책에 담긴 창세신화와 신들의 이야기는 게르만족 공통의 신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에다’에는 800~12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운문체의 고(古)에다와 이를 토대로 1220년께 저술된 산문본 ‘신(新)에다’가 있으며 현존 필사본 ‘고 에다’는 1270년께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신 에다’본 번역서와 달리 ‘고 에다(카를 짐록 번역본·1882)’를 원전으로 채택해 번역됐다. ‘고 에다’는 ‘신들의 노래’와 ‘영웅들의 노래’로 구성돼 있으며 두 부분은 주제면에서 밀접하게 연관돼 일체를 이룬다. 후반부 영웅시가의 핵심을 이루는 ‘지크프리트’ 전설이 독일 중세 영웅서사시의 금자탑인 ‘니벨룽겐의 노래’의 소재로 쓰였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임한순 최윤영 김길웅 옮김. 서울대출판부 발행.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수잔 벅 모스 지음
‘파사젠베르크’로도 알려진 이 책은 벤야민이 13년간 준비했으나 비극적으로 자살함으로써 완성하지 못한 미완의 메모를 토대로 프랑크푸르트학파 연구가인 저자가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역작. 1948년 이들 자료를 검토한 아도르노가 "파사젠베르크의 재구성은 만약 그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이라면 오직 벤야민만이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난해하고 방대하다. 총 7권짜리 벤야민 ‘전집’중 미완성 유고를 묶은 5,6권 가운데 5권이 이 책이다. 그가 남긴 메모 묶음과 개요를 정리한 책은 22개 대항목의 어마어마한 메모와 논평 묶음, 두 편의 보들레르 연구서 등으로 구성됐다. 파사젠베르크란 19세기 프랑스 파리에 처음 생겨난 회랑식 상가(파사주)에 어원을 두고 있다.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발행.
▲근사록집해 /주희·여조겸 편저, 엽채 집해
‘근사록’은 중국 송(宋) 효종 2년 두 편저자가 송대 성리학의 선도자인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의 저술을 읽고 그 가운데 학문적이면서 일상생활에 절실한 글들을 채록, 초학자들을 위해 1776년 편한 입문서. 이를 주희가 죽은 지 48년째 되던 해인 1248년, 주희의 제자인 진순에게서 배운 엽채가 주석을 단 것이 ‘근사록집해’다. 여러 주해서들이 있으나 국내 학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성리학을 공허한 고담준론이 아닌 일상적 삶의 도리로 익힐 수 있는 학문으로 자리잡게 한 이 책은 총 14장으로 이뤄졌으며, 성리학의 근본, 학문의 자세, 수양의 방법, 정치와 교육 등 일상의 바른 생활법을 가르치고 있다. 역주자는 거기에 상세한 해제와 주석을 달고 용어를 풀어 정리했다. 이광호 역주. 아카넷 발행.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피에르 그리말 지음
1951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래 그리스로마 신화의 표준적인 신화학 사전으로 평가 받으며, 지금까지 50년 넘게 여러 언어로 번역돼 온 책. 1,800여 개 항목에 200자 원고지 7,000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신화 전체를 망라한 것으로 인정 받고 있다. 고전학자인 저자는 호메로스의 시에서부터 12세기 비잔틴 학자의 주석에 이르기까지 고전 신화의 모든 1차 문헌을 섭렵했고, 논쟁적 사항들에 대해서는 원자료를 철저히 고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페이지가 넘는 찾아보기를 실어 표제를 포함해 약 3,000여 개 사항에 대한 세밀한 검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번역에는 2년 여의 기간이 걸렸으며 전공자의 감수를 받았다. 감수를 맡은 강대진 박사는 원저의 오류 부분을 감수자 주(註)를 통해 바로잡았다. 최애리 등 옮김. 열린책들 발행.
▲역사 속의 매춘부들 /니키 로버츠 지음
매춘의 역사를 여성의 입장에서 재구성, 매춘에 대한 남성 중심적인 지배담론을 전복시키는 책이다. 즉, 이 책은 매춘의 기원을 기존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문명의 사원 매춘에서 찾지만 이를 단순히 ‘다산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사제의 힘을 빌려 왕의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례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 자신이 매춘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도덕주의적 차원에 머물러 온 매춘 관련 담론을 뛰어넘는다. 그는 대개의 페미니스트들마저도 매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매춘부를 폄하하거나 매춘을 근절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매춘 문제를 성 상품화나 타락한 여성 구제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지혜 옮김. 책세상 발행.
정리=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편집 부문 후보작/탈근대·탈식민주의… 사회분석 새시각 제시
편집부문에서는 역사를 새로운 안목으로 되돌아보는 책들이 특히 눈에 띈다. 교양역사 시리즈로 매 권이 나올 때마다 특별한 주목을 받았던 ‘한국생활사박물관’, 서지학자 고 이종학 선생의 자료를 토대로 우리 근대의 초상을 그려낸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은 기획과 편집에서 다같이 돋보이는 책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최종 관문인 책문의 사례를 편집해 국가경영에 관한 선인의 고민을 엿보고, 시사점을 얻는다는 점에서 기획력을 높이 살만하다. 예심을 맡은 이동철 용인대 교수는 "탈근대와 탈식민주의 시각을 담은 책들이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한국생활사박물관(전12권)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왕조사 중심의 역사, 외우는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명하자는 의도로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다양한 이미지를 곁들여 생생하게 재현했다. 2000년 7월 첫 권이 나온 뒤 올해 제11권 ‘조선생활관 3’(근대편)과 제12권 ‘남북한생활관’(현대편)이 나란히 나와 완간됐다. 역사학자 인류학자 민속학자 등 연인원 400여 명이 참여한 방대한 기획물이다. 사계절 발행.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편역
조선 세종 때부터 광해군 대까지 과거시험에 나온 여러 편의 책문(策問)과 그 답안인 대책(對策)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고 해설까지 붙였다. 과거시험 최종 관문이던 책문과 대책에는 시험을 냈던 임금과 집사의 국사와 시정에 대한 고민, 문제를 푸는 젊은이들의 혜안이 담긴 것은 물론 갖은 정치문제로 혼란을 겪는 요즈음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소나무 발행.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새소리 백가지
국내의 새 전문가가 해설을 쓰고 세계적인 새 삽화가가 그림을 그려 알기 쉽게 소개한 교양 새 사전. 침엽수, 활엽수를 바늘잎나무, 넓은잎나무로 바꾸는 식으로 내용을 가능한 풀어 썼고, 새 그림은 특징을 잘 살렸다. 우리 새 소리 녹음에 전념해온 유회상씨가 채록한 새 소리 CD도 딸려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의 하나. 글 이우신, 그림 다니구치 다카시. 현암사 발행.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노형석 글·이종학 자료
서지학자인 고 이종학씨가 제공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 근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 391점과 해설을 담은 책. ‘근대’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신작로와 전차, 철도와 기차 등은 20세기 초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구한말의 근대화로 삶의 질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사람도 태우지 않은 채 달리는 전차처럼 진행된 것인지도 모른다. 근대사의 뒷편에서 놓친 일상이 생생하다. 생각의나무 발행.
▲난곡이야기 /김영종 지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 마을의 모습과 이를 무대로 살아가는 구충씨의 이야기를 함께 담은 사진소설. 작가 겸 사진가로 활동하는 김영종씨는 사진을 일반적인 삽화의 역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도록 만들었다. ‘가난의 문화’에 대한 사회의 공모를 폭로하거나 개발독재의 결과로 빈민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숭배하는 모순을 비판한다. 청년사 발행.
▲일본 근대의 풍경 /유모토 고이치 지음
1996년 출간된 ‘도설 메이지 사물 기원 사전’(圖說明治事物起源事典)을 번역한 책으로 일본 개국의 상징인 1853년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의 방문을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일본 사회의 급변하는 모습을 200개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재판제도 추밀원 등 제도 변화는 물론 수도 페인트 해수욕 양복 소고기전골 등 자잘한 생활상의 변화가 당시 신문 잡지 그림과 함께 생생하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동아시아 근대 세미나팀 옮김. 그린비 발행.
▲청계천을 가꾸다 /이해철 편저
조선 영조 때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공사를 하면서 공사 내용과 장면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 남긴 ‘준천개첩’의 국역 영인본이다. 원로 동양철학자 이해철 세종대왕기념관장이 원문을 한글로 옮기고 해설을 붙인 이 책은 영조가 오간수문 위에서 준천을 지켜보는 모습이 생생히 담긴 그림 등 자료 원본을 실물 크기대로 수록했다. 열화당 발행.
▲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지음
항공사진작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이 찍은 사진집. 하늘에서 찍은 지구 곳곳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환경 문명 역사 등에 대한 함축적인 에세이를 덧붙였다. 북극의 차가운 빙원에서부터 열대 군도까지, 파타고니아 평원에서 네팔의 현기증 나는 산꼭대기까지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진과 인간과 문명에 대한 차분하고 비판적인 성찰이 어우러졌다. 새물결 발행.
▲김성동 천자문 /김성동 지음
소설가 김성동씨가 한 자 한 자 직접 쓰고 그 의미를 오늘의 우리 삶에 비추어 해설한 새로운 천자문. 각각의 글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배경에서 그 글이 나왔는지를 설명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그림도 골라 넣었다. 고사와 역사 속 인물 등 이야기도 함께 소개해 인문적인 소양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청년사 발행.
▲An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서정수 편집
영어 사용자들이 한국문화를 손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 문화를 항목별로 설명한 영문 백과사전. 서정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언어 문학 예술 등 추상적인 영역에서 주택 의복 음식 예절 공예 통신 등 생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대표 항목들을 선정해 간명하게 해설했다. 한세본 발행.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어린이·청소년 부문 후보작/ 딱딱한 학교수업 한계 깬 재미·정보 가득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고 구성과 편집에 정성을 기울인 책이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쓴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적은 건 아쉽다.
어린이와 성인 틈바구니에 끼어 어정쩡하게 방치됐던 청소년 대상의 좋은 책들이 많이 늘어난 현상도 반갑다. 예컨대 ‘탐서주의자의 책’ 이나 ‘철학학교’ 는 생각하는 힘이 훌쩍 자라고, 사물을 보는 눈이 어른 못지않게 깊어지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빠져들며 탐독할 만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 ‘한국사 편지’ ‘아틀라스 한국사’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 등 딱딱하고 답답한 학교수업의 한계를 깨뜨리며 재미와 정보를 모두 전하는 책도 많아졌다.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책은 앞으로 우리 출판이 개척해야 할 영역이라는 점에서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진과 유진/이금이 지음
올해 국내 청소년문학이 거둔 값진 성과로 꼽히는 작품이다. 어린시절 성폭력을 당한 두 명의 유진이 청소년이 되어 다시 만난다는 설정 아래 전개되는 성장소설로,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접근법이 살갑고 경쾌해서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자신도 모르게 공명하게 만든다. 청소년뿐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푸른책들 발행.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이영미 지음
과학교사인 엄마가 부엌에서 두 딸과 요리를 하면서 과학 이야기로 수다를 떤다. 흔히 쓰는 요리재료와 도구, 주방용품을 사용해 팝콘 쿠키 잡채 오므라이스 수제비 라면 된장찌개 등 16가지 요리를 하면서 과학의 원리와 개념을 찾아내고 있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재미있게 다루면서도 집에서 당장 쉽게 해볼 수 있는 50여 개의 실험도 소개한다. 부키 발행.
▲엄마 마중/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20세기 한국 단편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이태준(1904~?)이 남긴 동화로 만든 그림책이다. 추운 겨울날, 전차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뭉클하게 표현했다. 동시에 가까운 짧고 간결한 글과 담담한 채색수묵의 그림이 서로 스며들 듯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글 없이 눈 내리는 거리 풍경만 나오는 마지막 3점의 삽화가 압권. 소년한길 발행.
▲경제를 보는 눈/홍은주 지음
생활 속의 사례 중심으로 경제의 핵심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경제교양서. 딱딱하고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결혼 군대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누구든지 응용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과 사고의 기술로서 경제의 원리를 자상하게 안내한다. 제목 그대로 경제를 보는 눈을 길러주는 책이자 경제와 친해지는 법을 일러주는 책이다. 개마고원 발행.
▲탐서주의자의 책/표정훈 지음
대단한 독서가이자 책 읽고 글 쓰는 일로 먹고 사는 지은이가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경험을 술회하고 책과 얽힌 온갖 기억을 털어놓은 지적 편력기. 그가 표현하고(文), 기억하고(史), 성찰하고(哲) 싶은 것들을 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읽고 쓴다, 고로 존재한다’고 자신을 규정하는 이 지독한 책벌레의 고백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다. 마음산책 발행.
▲철학학교 1, 2/스티븐 로 지음, 하상용 옮김
재미와 깊이를 갖춘, 피부에 와 닿는 철학 입문서. 친구나 동료, 부부 간의 대화, 모의 법정, 신과 신자 사이의 논쟁, 로봇과 주인의 설전, 외계인과 지구인의 논리 싸움 등 다양하고 독특한 설정 아래 철학의 주제들을 구체적으로 풀어간다. 구름 잡는 듯한 해설을 피하고 뚜렷한 주장과 근거 있는 논증을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 창비 발행.
▲아틀라스 한국사/아틀라스 한국사 편찬위원회 지음
지도로 보는 우리 역사 책. 183컷의 지도와 93개의 사진자료, 46개의 다이어그램으로 주요 사건과 통계를 정리하고, 양쪽 펼침으로 지도와 글을 한 면에 배치해서 한눈에 들어온다. 산맥이 꿈틀거리는 듯 실제 지형과 지세를 실감할 수 있는 입체지도를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전공학자들이 집필하고 철저한 고증으로 지도를 완성해 알차고 짜임새 있는 책이 되었다. 사계절 발행.
▲우리 곤충 도감/이수영 글·사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추잠자리부터 멸종위기종인 산굴뚝나비까지 산 들 연못 하천 등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곤충 16목 114과 371종이 실려있다. 20여 년 동안 곤충사진만 찍어온 작가가 고르고 고른 사진이 큼직큼직 시원스럽게 들어있다. 알에서 애벌레로, 다시 번데기로, 마침내 화려한 성충이 되는 과정과 사냥, 집짓기 등 곤충의 생태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예림당 발행.
▲우리 식물 도감/김태정 글·사진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우리 땅 곳곳에서 자라는 한국 토종식물을 비롯해 외국에서 들어와 자라는 귀화식물 등 총 83과 540 종의 식물을 소개했다. 각 식물의 사진과 함께 이름 분포지 키 뿌리 줄기 잎 꽃 피는 시기 열매 맺는 시기 쓰임새 등의 순으로 설명했다. ‘계절과 꽃 색깔로 찾아보기’를 마련, 이름을 모르더라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예림당 발행.
▲고구려의 혼 고선지/김영현 글, 허태준 그림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어 사라센 제국을 정벌한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를 소개하는 역사인물 동화. 장군의 서역 정벌은 그 과정에서 유럽에 종이와 화약, 나침반 등을 전함으로써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 주인공이 장군의 행적을 좇아 비단길을 여행하며 그의 삶을 생생히 전한다. 현장을 직접 답사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기록물로도 충실하다. 웅진닷컴 발행.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이강옥 글, 이부록 그림
고전문학자인 아빠가 겁쟁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우리 귀신 이야기. 조선시대 야담집에서 가려 뽑은 30여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단순히 귀신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았고 인생철학은 어떠했는지 일러주어 우리 문화와 역사를 보는 눈을 틔워주는 것이 이 책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진경문고 발행.
▲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다니엘 페낙·미셸 투르니에 등 지음, 박언주 박희원 옮김
세계적인 작가 10명과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쓴 짧은 소설 모음. 작가들이 소설 첫 머리를 쓰고 아이들이 이어받아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대표적 문예콩쿠르 ‘주 부퀸’ 입상작들이다. 같은 첫머리를 놓고도 아이들마다 풀어나간 이야기가 달라 흥미롭다. 한편 한편이 다 재미있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싶게 감탄스럽다. 낮은산 발행.
▲반짝벌레/차보금 지음, 박수지 그림
두 아이의 엄마인 책벌레 아줌마가 쓴 판타지 동화. 이 책 저 책으로 옮겨 다니며 책 향기를 먹고 산다는 반짝벌레가 주인공이다. 책만 펼치면 잠이 오던 기쁨이는 반짝벌레 덕분에 책 나라 여행이 얼마나 스릴 있고 흥미진진한지 알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까지 11편의 동화나라로 모험을 떠난다. 작가의 재치와 익살에 계속 웃음이 터진다. 현암사 발행.
▲시가 말을 걸어요/정끝별 글, 사석원 그림
시를 쓰는 게 쉽고 즐거운 일이며 주위 어디서나 소재를 찾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집. 시인인 지은이가 어린 두 딸과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동시 40편을 골라 해설을 붙였다. 일방적인 설명을 피하고 시를 읽으면서 상상력과 표현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함으로써, 어린이들의 생각과 글을 키워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토토북 발행.
▲우리 그림 진품명품/장세현 글
구수한 입담으로 우리 그림 읽는 법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친절한 설명과 맛깔스런 글솜씨가 독자를 그림 속으로 쑥 끌어당기며 그림의 참 맛을 깨닫게 한다. 각 장은 재미난 이야기로 시작해서 작가와 그림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가며 그림 감상을 돕고, 그림 안팎을 넘나드는 세상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현암사 발행.
▲이상한 집/송명진 그림, 최승호 글
시처럼 잘 다듬어진 말과 상상의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환상적인 그림의 한글공부 그림책. 자음과 그 자음이 받침으로 쓰인 다양한 낱말을 숨은그림찾기 놀이 하듯 맞춰가며 익히도록 구성했다. 각 장의 그림은 시공간을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간간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숨어있어 그림을 더 유심히 보게 만든다. 비룡소 발행.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1, 2 /정민 박수밀 박동욱 강민경 지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 낱말들의 뜻과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생생한 도판을 곁들여 재미있게 풀이한 책이다. 1권은 ‘생활과 한자’, 2권은 ‘문화와 한자’다. 권마다 100여 개의 키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우리 문화 이야기로 깊게 들어간다. 한자를 익히면서 그 속에 담긴 선인들의 문화와 바른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휴머니스트 발행.
▲한국사편지 1~5/박은봉 글
역사 전문가인 엄마가 초등학생 딸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책.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본격적인 비주얼 한국사 시리즈이기도 하다. 한국사의 전체 흐름 속에서 전환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을 골라 역사적 의미를 충실하게 짚어줌으로써 역사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웅진닷컴 발행.
정리=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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