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개월짜리 아들을 둔 한모씨. 최근 한 유아전문서적 판매원의 방문을 받고는 사뭇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판매원은 유아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하더니 아이 있는 집에 한두 질은 기본이라며 한 질에 50만~70만원짜리 전집류를 권했다. 결혼 6년만에 얻은 첫 아이였다. ‘그래, 유아기 독서가 중요하다는데 두고 두고 읽히면 되지…. 눈 질끈 감고 카드를 긁어? 말어?’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한씨와 같은 갈등을 한두 번씩은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동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전집류가 유아들에게 책에 대한 중압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부설 독서와 언어사고연구소 신현숙 실장은 "유아기는 평생의 독서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면서 "아이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집류를 안기는 것은 오히려 책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신현숙 실장으로부터 유아기 올바른 독서지도 방법을 들어본다.
_ 책 읽기는 언제부터 해야하나.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대략 영아의 시각이 고정되는 시기가 생후 6개월 전후이므로 이때부터 시작한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는 헝겁책이나 아이손으로 슬슬 밀고 넘겨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사물책을 갖고 놀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개념보다 책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해주는 단계다."
_ 책을 장난감 처럼 생각하게 만들라는 뜻인가.
"장난감 보다 더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책을 만지고 놀면 엄마나 아빠가 기뻐하고 같이 놀고 싶어하는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아이는 책에 대한 부모의 긍정적인 태도와 애정을 배우면서 자율적인 독서능력을 키운다."
_ 이미 전집류를 샀다면 어떻게 하나.
"한 질이 주는 중압감은 책읽기의 동기유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별다른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많어?" "이걸 다 봐?"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면 안보이는 곳에 치워두고 한두 권씩만 꺼내서 준다."
_ 과학이나 생물도감 같은 책들도 유아용 전집류로 많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사막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 낙타를 아는 이유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혹독한 사막기후에 알맞게 생존능력을 키운 이 특이한 동물에 대한 선행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아들은 이런 선행지식이 없다. 생물도감류를 유아들이 외워 알 수는 있어도 정확한 개념 형성은 없는 셈으로 의미없는 독서를 부추기는 꼴이다."
_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만 2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그림책 읽기에 들어간다. 그림책이란 말 그대로 그림과 글이라는 두개의 매체로 구성된 일종의 멀티미디어다. 성인용 책의 삽화와는 틀리다. 삽화는 글의 내용중 일부를 설명하기 위한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이야기가 충분히 이어져야 한다. 책을 펼치면 어른들은 문자부터 읽지만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한다. 당연히 좋은 그림책은 그림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책이다."
_ 그림책 구입시 주의점은 있나.
"그림책의 글들은 운율이 있다. 말의 결 혹은 맛을 내기 위한 장치로 우리말의 운율이나 음감을 체득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부모가 소리내어 읽어보고 구입한다. 혀에 착착 감기는 운율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그림책이다. 글자가 너무 많은 것은 사지않는다. 만 2~4세까지는 50~70단어, 만 5~7세 정도의 아이들은 300~600단어 정도의 글자가 들어있으면 적당하다."
_ 책 구입시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라는 말도 있다.
"맞벌이 부부에겐 쉽지않은 일이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고르게 하는 경험은 무척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아이가 싫어하면 강요하지 않는다. 유아기 독서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서능력, 즉 구조화된 사고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전집류를 사는 것이 좋지않은 이유도 책을 고르고 읽는 재미 같은 과정을 생략한 채 수량화된 독서로 내몰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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