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차지만 미니스커트에 투박한 어그부츠를 신은 젊은 여성을 보는 게 어렵지않다. 패션계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불황기엔 치마가 짧아진다’는 속설이 드디어 입증됐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패션전문가들은 "경기가 옷차림을 비롯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의 미니 유행을 ‘불황 덕(?)’으로 몰아가는 것은 억지 춘향식 단순화"라고 지적한다. 유행의 심리에는 경제적 요인외에도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2004 겨울의 미니스커트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25일 현대백화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1월 1~24일 시슬리 시스템 96뉴욕 등 영캐주얼브랜드의 미니스커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이상 증가했다. 업체쪽에서도 미니의 물량을 늘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원의 캐주얼브랜드 쿨하스는 지난해 스커트류 14개 스타일중 10개를 미니로 출시했지만 올해는 12개 스타일에 10개로 미니 비중을 높였다.
그러나 미니 매출이 높아졌다는 브랜드들을 잘 살펴보면 이들이 대부분 10대~20대 초반을 겨냥한 캐주얼브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여성브랜드의 경우 사정은 다르다.
여성캐릭터 브랜드 베스티벨리와 씨는 올해 미니스커트를 단 한 종류도 내놓지않았다. 마인 미샤 타임 등 여성복 대표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복고풍 바람을 타고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레이디라이크룩(Ladylike Look)은 성숙한 펜슬스커트나 봉긋하게 부풀린 공주풍의 무릎길이 스커트를 우위에 놓고 있다. 미니의 유행 한쪽에는 무릎이나 그 보다 더 긴 종아리 길이의 치마도 인기아이템으로 군림하고 있다.
결국 미니차림의 증가는 중간길이 치마 시장을 잠식하기 보다는 바지 보다 치마를 선호하는 복고풍 트렌드의 영향에 힘입어 바지시장을 잠식한 결과라는 주장도 나온다.
◆ 미니는 불황의 자식이 아니다
‘불경기=미니’라는 등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니스커트가 불경기 보다는 호경기,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의 시대에 탄생했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패션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출현으로 일컬어지는 허벅지 길이의 미니스커트는 1960년대 중반 영국에서 태어났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황무지로부터 경기가 회복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눈부신 과학문명의 발전을 목격하면서 패션은 파리 오트쿠틔르의 고상함 대신 런던의 혁신성과 젊음, 낙관주의를 선택했다. 일자리의 확대로 돈을 쥐게 된 젊은이들은 싸면서 트렌디한 옷을 원했고 영국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디자인한 미니스커트는 단번에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역사적으로 불경기는 오히려 긴 치마와 더 상관이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시기가 대표적이다. 1920년대 플래퍼 룩 (Flapper Look·말괄량이 스타일)이 역사상 최초로 여성에게 무릎을 내놓을만큼 짧은 치마를 제공했지만 30년대 대공황은 도피주의 패션을 유행시키면서 치마길이를 다시 발목이나 종아리까지 내렸다. 여성들은 현실도피를 위한 수단으로 할리우드 여신처럼 길고 환상적인 패션을 선호했다.
오일쇼크로 얼룩진 70년대에는 60년대부터 시작된 미니 혁명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미니와 맥시 길이가 공존하다가 중반이후부터는 전세계를 휩쓴 히피문화의 영향으로 청바지와 민속풍의 롱스커트가 인기를 끌었다. 물론 유럽의 경우 2차대전 당시 물자절약을 위해 각국 정부가 원단의 사용을 제한하고 전시복장 규범을 마련한 경험은 있다. 그러나 목적은 과잉장식을 배제한 간단복을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지 치마길이가 아니었다.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 수석은 "국내 처음 미니스커트가 들어온 것이 60년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에 가난한 시절의 파격적인 옷차림이라는 인식이 박혔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도 "그렇다고 60년대가 전쟁기간 보다 불황이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개성과 다양화, '공존'의 트렌드
한성대 의생활학과 김성복 교수는 "불황기엔 천 값을 아끼기 위해 치마가 짧아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원단 소비촉진을 위해 긴치마가 유행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유행패션이란 포화상태가 되면 식상하고 역발상의 패션이 고개를 드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요즘의 미니는 불황보다는 오히려 ‘추리닝패션’으로 일컬어지는 스포티즘에 식상한 사람들이 캐주얼한 레이디라이크룩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도드라진 현상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또 서정미씨는 "불황에 미니가 뜬다는 말은 가난한 사람은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말처럼 설득력이 없다"면서 "오히려 개성을 중시하며 몸매를 드러내려는 과시주의, 몸짱이 대우받는 사회분위기가 미니의 유행을 설명하는데 더 부합한다"고 말한다.
서씨는 "현대는 미니뿐 아니라 무릎길이 치마나 밑위 길이를 극도로 짧게 만든 섹시한 청바지류가 함께 유행하는 트렌드의 공존시대라는 점에서 ‘불황=미니’라는 단순 도식화는 패션현상에 대한 오해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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