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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어제 시상식/ 소설가 김경욱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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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어제 시상식/ 소설가 김경욱 수상소감

입력
2004.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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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저는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축구시합 도중 무릎을 다쳐 수술을 두 차례 받아야 했던 것이죠. 마취로 인해 감각이 없어진 하반신을 추스르며 수술대 위에 누워 있던 저의 정신은 위태로울 만치 집중되었습니다. 집중된 정신 속에서 연골이 찢어진 저의 무릎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의 도시 뒷골목만큼이나 아득했습니다. 아득해서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툴툴 털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찢어진 연골을 제거할 때 마비된 감각의 계통은 뼈의 울림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울림은 아득했지만 절박했습니다. 위태롭게 벼려진 저의 정신은 그 순간 ‘뼈저리다’는 단어의 뼈저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언어와 그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 사이에는 어떤 필연성도 없다고 말한 것은 스위스 출신의 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기호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했을 때 그는 옳으면서 틀렸습니다. 그날 수술대 위에서 저에게 ‘뼈저리다’는 단어는 더 이상 클리셰가 아니어서 의미를 만드는 것은 기호들의 차이가 아니라, 언어와 그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의 느슨한 틈을 메우는 구체적인 삶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스위스 사람 소쉬르는 문학가가 아니라, 과학자였던 것이지요.

19세기 말 영화가 발명되었을 때 관객들은 질주해오는 기차를 보고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들의 혼비백산 속에서 스크린에 투영된 영상과 그 영상이 환기하는 실체는 하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진짜라고 믿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다’는 것은 그 세기의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와 공장을 화면에 담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활동사진이 증거하듯 영화는 명백히 19세기 시대정신의 산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소설조차도 그 시대정신에 복무했습니다. 갓 태어난 영화에 비하면 오히려 그 세기의 우세종은 소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이젠쉬타인이 디킨즈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몽타주 이론을 확립한 이래 소설은 시대와의 짧았던 밀월을 급속히 청산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19세기 사실주의 소설 이후의 소설이란 모두 일종의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술을 마친 후 한동안 저는 거동하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하릴없이 드러누워 있는 사이 20세기와 더불어 저의 20대가 끝났습니다. 증기기관이 만들어낸 시대정신은 달려드는 기차의 영상을 봐도 더 이상 혼비백산하지 않는 관객을 위해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보이게 만듦으로써 21세기에도 건재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소설을 쓰고 싶었던 저는 씌어지지 않는 소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소설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본질에 대한 그 질문은 질문함으로써 답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소설의 본질은 그것에 대한 질문이 끝나는 곳, 낚시바늘 모양의 물음표에서 비롯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질문의 양식입니다. 초월하지 않고 견디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과연 전부 진실인가?하고 묻는 것입니다. 하드보일드하게, 아프게 묻는 것입니다. 시대정신이 진실이 아닌 환상을 유포한다면, 소설은 기꺼이 시대착오를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시대의 소설은 ‘시대에 대한 착오’가 아니라 ‘시대의 착오’에 대해 날선 질문을 들이대야 합니다.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더 나은 생은 없다"는 프루스트의 전언을 내내 기억하겠습니다.

제 어눌한 질문을 긍휼히 여기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기왕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 아닌 장래의 정진에 대한 격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넓게 읽고 깊게 생각하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 "젊은 소설가 수상으로 한국문학 지층 넓어져"

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김경욱(33·울산대 교수)씨에 대한 시상식이 10일 오후3시 한국일보사 12층 남산룸에서 열렸다. 이종승 한국일보사 사장과 후원업체인 한국가스공사 이규선 부사장은 김씨에게 상금 2,000만원과 상패를 각각 수여했다. 본심 심사위원인 김병익(문학평론가) 씨는 축사에서 "상의 연륜보다 어린 소설가가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수상자의 영광인 동시에 한국문학의 지층이 그만큼 넓어졌고 두터워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이순원, 시인 윤희상씨와 소설가 김훈 배수아 한강 오수연 김연수 강영숙 윤성희 정이현 천운영 씨, 출판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최윤필기자 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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