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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美軍 피로감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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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美軍 피로감 극에 달했다

입력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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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까지 고철 조각이나 못쓰게 된 방탄유리를 찾아야 하죠?"(토마스 윌슨 상병) 2,300여 병사들의 우뢰와 같은 동감의 박수 소리. "그게 무슨 말이오?"(당황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제대로 된 장갑차가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윌슨 상병)이라크 전쟁의 사령탑이랄 수 있는 럼스펠드 장관은 8일 쿠웨이트 부에링 미군기지에서 병사들로부터 이처럼 망신을 당했다. 미군 병사들은 이날 럼스펠드 장관의 격려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왜 장비가 모자란가", "왜 이렇게 장기 복무를 해야 하나", "부대에 따라 장비 공급 차별을 하는 건 아니냐" 등 불만을 마구 쏟아냈다.

럼스펠드 장관은 "세상의 모든 장갑을 몸에 두르고 탱크에 타고 있어도 (부비트랩 등에 걸리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군인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얼버무리려 애썼지만, 이미 망가진 체면을 다시 세울 순 없었다. 그는 끝내 얼굴을 붉힌 채 도망치듯 자리를 떠야만 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일을 단순한 군기 차원이 아니라 항명(抗命)에 가까운 사건으로 간주하고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폭스 뉴스는 "럼스펠드 장관이 병사들에게 혹독하게 당했다(grilled)"고 단정했고, AP 통신은 윌슨 상병의 전 부인까지 인터뷰하며 질문자의 성격을 분석한 뒤 "병사들이 이처럼 직설적으로 장관을 몰아붙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이라크 현지 수송부대원의 명령거부 사건, 주방위군 지원기피 등과 맥을 같이 하는 전쟁피로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대체적 견해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병사들의 목소리는 전쟁의 긴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말했고, CNN은 군사자문역인 도널드 셰퍼드 예비역 소장을 인용해 "전쟁이 이렇게 장기화할 줄 누구도 예상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진단했다.

병사들의 항변을 아예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태도를 취한 럼스펠드 장관의 답변태도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민주당의 프랭크 로텐버그 상원의원은 럼스펠드 장관의 이날 답변을 "경멸한다"고 말했고, 예비역 장군인 배리 맥카프리는 "모든 문제를 부정했다"고 비꼬았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 美軍 피로증후군 사례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의 전쟁피로증후군이 최근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하루 4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병사들이 두뇌에 피로가 쌓이면서 우군을 적으로 착각해 총격전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행군 도중 잠을 쫓기 위해 병사들이 서로 뺨을 때리다가 욕을 하며 다투는 사례는 등 각종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2개월 전에는 미군 18명이 안전 미비를 이유로 명령에 불복종해 구금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수송 차량에는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보호장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논리로 보급품 수송명령을 거부해 정당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6일에는 현역 군인들이 복무연장 명령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초 이라크에 파견된 뒤 복귀해 주방위군 소속으로 편입돼 있는 미군 8명이 "복무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강제로 기간을 연장하려 한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워싱턴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국방부는 현재 이라크 전쟁 후 전역중단(stop-loss) 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병사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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