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파행, 공전, 정쟁, 구태….’9일 막을 내린 17대 첫 정기국회는 대폭적 물갈이와 세대교체에 따른 신선함의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기대 이하 였다. 이념 논쟁에서 비롯된 색깔공방과 막말 비난, 폭력이 뒤엉킨 몸싸움 등 구태가 되풀이 됐고, 8일 터져 나온 이른바 ‘간첩 논란’때문에 여야는 마지막날까지도 공방으로 국회를 얼룩지게 했다. 정기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예산안 처리조차 하지 못했다. 정책을 놓고 여야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발전적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17대 첫 정기국회의 저조한 생산성은 한 두가지 지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17대 들어 제출된 1,126건의 안건 중에 9일까지 처리된 안건은 263건에 그쳤다. 겨우 23.4%다. 활?중 법률안은 958건이 제출됐지만 처리는 161건(16.8%)밖에 안됐다. 수많은 민생·경제 법안들이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정기국회를 넘기게 됐다.
여야가 앞 다퉈 ‘상생’을 외치며 출발했던 정기국회는 파행으로 점철됐다. 9월 정기국회 개회 후 열린우리당이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한나라당 퇴장속에 단독 상정하자 한나라당이 "야당 흠집 내기를 위한 법안"이라고 비난하면서 전운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10월 국정감사에선 정책감사는 뒷전인 채 색깔론 공방과 폭로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친북교과서’주장을 둘러싸고 이념공방이 불붙었고 통외통위와 국방위에서는 국가기밀 누설 논란이 국감장을 뒤덮었다. 이는 상호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비화됐고 결국 국회 윤리위 맞제소로까지 이어졌다. 10월28일 대정부 질문에서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으로 한나라당은 등원을 거부했고, 여야는 기싸움을 벌이다 12일간 국회를 전면 마비시켰다.
막바지 정기국회는 더 심했다.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처리를 주장하고 한나라당이 강력 저지 태세로 나오면서 결국 격렬한 몸싸움까지 연출됐다. 국보법 폐지안을 상정하려던 여당과 이를 막으려던 한나라당은 법사위 회의장을 폭력의 장으로 만들었다. 한나라당의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 노동당 가입 간첩’주장은 폐회 직전까지 파국을 불렀다.
예산안 처리를 위한 예결위 역시 소위 위원장 자리를 놓고 파행을 거듭하다 폐회 10여일을 앞두고서야 예산안을 상정했다. 법정 처리시한(2일)을 넘긴 것은 물론 졸속 심의가 불가피하다.
의정모니터 활동 중인 참여연대 김민영 시민감시국장은 "여야 힘겨루기에 따른 국회 파행이 과거와 한치도 달라지지 않고 더 악화됐다"고 평가하며, "국회개혁특위를 조속히 가동, 국회 운영방식 개선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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