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규제개혁을 내세워 각종 제도의 통폐합,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견수렴과 그 파급효과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결여돼 있는 것 같다. 일전의 규제개혁 관계장관회의에 상정된 대규모 유통점포신설 및 영업활동규제 개선방안도 마찬가지다.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과 주무부서의 대안, 타부서의 중재안 등을 무시한 채 총리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처리, 공식 발표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이는 토론과 대화를 중시한다는 정부 의지와도 상반된 것이다.이날 확정된 대규모 유통점포 신설 관련 방안 중 교통영향평가를 건축위원회에 통합심의 하겠다는 것은 특히 문제다. 이는 교통영향평가를 없애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확정 안은 사회공공적 기능 확보를 최우선시하는 교통영향평가의 본래 취지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익(私益)을 대변하는 건축부문과 공익(公益)을 대변하는 교통부문을 통합 심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 둘은 태생이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분리 심의에 따른 심의지체, 중복심의가 문제라면 이는 기존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개선안은 분야별 위원회의 의견 상충도 문제삼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점에서는 도시계획, 도로, 조경, 경찰, 교통, 건축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참여, 효율적 심의와 조정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현행 교통평가위원회가 더 유리하다. 개선안은 대형 유통점포의 공익성과 건축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도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있다.
정부는 특히 대규모 유통점포를 신설할 때 교통영향평가가 방해요인으로 작용한 사례로 광주 A할인점 케이스를 들고 있는데 이는 사업초기 단계에서 교통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행정행위가 원인이므로 이 역시 개선, 보완으로 해결 가능한 사안이다.
우리나라의 교통지체로 인한 혼잡비용은 연간 약 22조원으로 일년 예산의 17% 수준이며, 교통물류비용은 선진국의 2~3배에 달한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은 국가경쟁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전락시키는 한 요인이다. 교통영향평가는 이 비용을 줄이는 훌륭한 대책이다. 교통영향평가는 지난 한 해 무려 4조원에 달하는 직·간접적 공공 교통시설 유치효과를 냈다. 이는 부족한 공공부문재정을 민간부문이 간접 보완, 대체해준 셈이다.
교통영향평가는 20여년간 교통개선 및 물류수송비용 절감에 기여해 온 점으로 봐도 오히려 더 강화,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를 대규모 유통점포 신설을 위한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이번 방안은 도저히 납득키 어렵다. 교통영향평가제도 시행과정에서 물론 문제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 기여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운영상 문제는 합리적으로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임기응변식으로 다루다 필요하면 다시 새로운 제도를 옥상옥 식으로 만들어 얹는 정책 행태는 그동안 질리도록 보아온 바다.
이성모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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