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끝나버리고, ‘해리 포터’는 여름으로 시간대를 옮긴 2004년 한국의 ‘12월 극장가’는 다소 한산하다. 대신 그 반작용으로 좀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데, 먼저 소개할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이다. 전작의 유쾌함과 르네 젤위거의 귀여운 노처녀 연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고 현실감 있으면서도 사랑스러운 상황설정은 관객들의 가슴에 서서히 젖어 들었으며(‘All by Myself’를 부르던 젤위거!), 재치 넘치는 대사의 감칠맛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이처럼 성공한 작품의 속편에게 지워진 숙명이라면 업그레이드. ‘열정과 애정’은 물론 유쾌하지만, 그렇게 새로워 보이진 않는다.브리짓 존스의 첫번째 일기가 남녀의 ‘관계’와 여주인공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그녀의 두번째 일기엔 ‘양념’이 많은 편이다. 해외 로케이션과 액션의 비중을 높인 건 흥행에 대한 부담감 탓인 듯한데, 약간은 ‘오버’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어느 정도 감안한다면, 젤위거의 뾰로통한 표정과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의 매력만으로도 만족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서른 세 살 노처녀라면(?)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뮤지컬 계의 ‘미다스의 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을 느낀다는 ‘오페라의 유령’이 조엘 슈마허 감독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이게 미덕이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과 거의 다르지 않다. 국내 뮤지컬 무대를 놓친 관객에게, 혹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영화. 무대의 3차원 공간이 스크린이라는 2차원 평면으로 바뀌었다는 건 큰 흠이 되지 않을 듯 싶으며, 오히려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영화 매체의 특성은 거대한 세트와 함께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비욘드 사일런스’의 카롤리네 링크 감독이 연출한 ‘러브 인 아프리카’는 2003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륙이다. 나치를 피해 아프리카로 온 유태인 가족의 이야기인 ‘러브 인 아프리카’는 낯선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그곳에 적응하고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훈훈한 스토리도 아프리카의 커다란 스케일만큼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엄청난 메뚜기 떼가 등장하는 장면은 재앙 이전에 하나의 스펙터클이다.
한국에선 주로 ‘영화제용 감독’으로 통하는 츠카모토 신야의 ‘6월의 뱀’은 냉랭한 관계의 한 부부 사이에 어느 스토커가 개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과거의 츠카모토가 금속성이었다면, ‘6월의 뱀’에선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느낌이 인상적. 현대 도시인의 소외와 단절이라는 주제는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그것을 섹스와 욕망의 관계로 풀어나가는 것도 익히 접했던 방식이지만 츠카모토 감독이 15년 동안 준비했던 영화였던 만큼 독창적인 비주얼은 인상적이며 여주인공의 급진적인 모습은 근래에 보기 드문 캐릭터다.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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