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아침 7시20분(현지 시각) 이라크 북부 아르빌 공항. 여명을 뚫고 노무현 대통령과 수행원 등 30여명이 탑승한 공군 수송기 1호가 활주로에 내렸다. 공항 근처에 있는 자이툰부대 주둔지는 여의도보다 약간 작은 100만평 규모였는데 주변은 나무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삭막했다. 그러나 장병 600여명이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확 달랐다. 장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환영했기 때문이다.철통 보안 작전 속에 이뤄진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은 많은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우선 우리 정부가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 사실을 이라크와 쿠웨이트측에 사후 통보하는 바람에 정부 수행원과 기자단 등의 이라크, 쿠웨이트 방문 사실이 여권에 기록되지 않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방문을 마치고 쿠웨이트로 다시 돌아온 직후 현지 대사들을 통해 이라크 총리와 쿠웨이트 국왕에게 친서를 보내 각각 아르빌 지역 방문 사실을 알리면서 이해를 구했다.
이라크측에는 사후에 통보했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측에는 미리 알려 적극적 협조를 받았다. 노 대통령이 탄 공군기가 이라크 영공 내로 들어섰을 때 미군 전투기 4대가 초계 비행을 했다. 노 대통령이 프랑스를 출발한 직후 기내에서 "이 비행기는 바로 서울로 가지 못한다"고 발표했을 때 대다수의 승무원들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대한항공측에서는 조종사와 비행기에 동승한 사장 등 극소수 인사만 하루 전날 특별기가 쿠웨이트로 가야 한다는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도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 계획까지는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자이툰 병원을 방문했을 때도 입원한 쿠르드족 환자들에게 자신이 대통령임을 소개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쿠르드족 남자에게 현지어로 "베야니 바쉬"(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서도 한국인 근무자에게 "이 분이 내가 누군인지 모르겠죠"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이라크 파병 국가 정상 중에는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이라크전 개전 이후 미국, 영국, 폴란드, 이탈리아, 호주, 스페인, 불가리아의 정상들이 이라크를 방문했다.
또 자이툰 부대의 한 지휘관은 노 대통령 앞에서 "베트남전 파병 때는 우리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으나 확인 결과 베트남 전 파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10월 베트남 전장을 전격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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